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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청아한 가곡으로 어려운 이웃 위로할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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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악(正樂) 여창(女唱) 가곡' 부문 인간문화재 전수자인 정마리(30)씨는 어린 시절 '지리산의 하이디'로 불렸다.

부모 덕분에 그렇게 됐다. 그의 부모는 각각 경기고와 서울대, 경기여고와 서울대를 나온 세칭 '일류'였다. 그러나 서울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아버지 정재건(60)씨가 정씨의 언니가 백일이 됐을 무렵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껴 연고도 없는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의 의신마을 외딴집으로 이주했다. 그는 이 곳에서 벌꿀을 채취하고 녹차와 사슴을 키우며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정씨는 이런 부모 밑에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처럼 지리산을 헤집고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처럼 농사꾼이 되려던 그가 전공자라고는 50명 밖에 되지 않는 국악 정악을 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다.

"여름방학 때 국악고를 소개하는 책자를 읽었어요. 국악 정악에 관한 소개가 있었는데 목소리가 맑고 고운 사람이 적합하다는 거예요. 노래를 좋아했고 목소리도 맑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제 얘기다 싶었죠."

1990년 국악고에 입학한 뒤부터 전통 가곡으로도 불리는 정악 가곡을 하는 국악인의 길을 걷게 됐다. 서울대 국악과와 대학원을 나온 그는 10대 후반에 이미 인간문화재로부터 기능을 이어받을 제자로 정해질 정도였다.

정악 가곡은 종묘제례악에서도 불리며, 시조 등에 곡을 붙여 관악과 현악 등의 반주에 맞춰 노래한다. 시범을 보여 달라는 청에 그는 맑고도 느린 목소리로 "버들은…"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우조 '여창 이수대엽'이라는 이 곡 첫 머리 세 음절을 부르는데 1분 가까이 걸렸다.

"정악 가곡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음악이기 때문에 감정을 절제한 맑은 목소리로 노래해야 합니다. 흐름이 빠르고 소리가 격한 판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음악입니다."

그래선지 15년 넘게 국악을 한 그의 목소리도 어린 아이처럼 맑았다. 정씨는 7일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관리공단 2층 대강당에서 열리는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 2005년 후원금 전달식' 공연 준비에 분주하다. 그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연탄이 물론 중요하지만 나의 음악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공연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은 지난 1년 동안 저소득층에 50만 장, 북한 주민에게 65만 장의 연탄을 전달한 바 있다. 정씨는 다음달 8일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전통가곡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공연을 펼치며, 11월 18~19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독창회도 준비 중이다.

글=왕희수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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