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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골이 어린이, 수술 덕분에 잠 푹 자고 키 많이 자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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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기억 속의 아버지 모습은 ‘흰 가운’과 ‘헤드미러(head mirror·반사경)’로 상징된다. 이비인후과 의사인 아버지는 항상 동그란 거울이 달린 헤드미러를 머리 위에 쓰고 환자를 진료했다. 아버지의 진료실을 놀이터 삼아 드나들던 그는 ‘나중에 크면 아버지처럼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 돼야지’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의사의 길을 걷게 된 그는 헤드미러를 쓸 수 있는 유일한 진료과목인 이비인후과를 전공으로 택했다. 아버지 세대의 헤드미러를 내시경으로 대신하며 코 질환의 간단한 약물치료부터 전문적인 수술까지 담당하는 강동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이건희 교수의 얘기다.

이건희 교수는 편도가 비대해져 코를 고는 소아환자에게 ‘피타수술’을 시행한다. 기존의 편도절제술보다 통증이 적고 회복이 빠르기 때문이다. [신동연 객원기자]

아이 잠버릇 살펴보며 건강상태 파악

“어? 이건희 회장?” 이건희 교수의 이름은 환자에게 쉽게 각인된다. “환자들이 이름을 기억해주니 좋다”는 이 교수는 ‘소아 코골이 전문가’ ‘자비를 털어서라도 공부하는 의사’ ‘가족이 아플 때 치료를 부탁하고 싶은 의사’라는 수식어로 설명된다. 그가 담당하는 분야는 코다. 축농증·코골이·수면무호흡증 같은 코 질환과 편도 및 아데노이드 절제술, 풍선카테터 축농증수술, 코 성형 등 각종 코 수술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알레르기 비염 유병률이 10대 전후에 높다 보니 자연스레 소아환자를 담당하는 시간이 많다.

 소아환자를 대할 때는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농담이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대학병원 소아환자의 대부분은 다른 병원들을 거치며 공포감이 극대화된 상태”라며 “가급적 눈을 맞추고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통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없애는 게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다양한 코 질환 중에서도 소아 코골이에 주목한다. ‘아이가 코를 골아봤자지…’라는 생각을 경계한다. 이 교수는 “소아 코골이는 3~12세 어린이 중 10∼25%가 해당할 정도로 흔하다”며 “그중 10%는 폐쇄성 수면무호흡증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이를 가벼운 잠버릇으로 여기고 방치하는 부모가 대다수지만 아이의 키 성장은 물론 성격·학업능력에 직결된다. 이 교수는 “코골이는 결국 코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인 호흡이 곤란하다는 신호”라며 “숙면이 어려워 성장호르몬 분비가 저하되고 행동·학습 장애, 심하면 심혈관계와 지능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수면 부족으로 아이는 짜증이 늘고 공격성·과잉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아이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려면 잠버릇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지론인 이유다. 그는 “코를 골지 않더라도 아이가 잠잘 때 자꾸 땀을 흘리며 몸을 뒤척이고 몸부림치거나 목을 길게 빼는 자세를 취한다면 코에 문제가 생겼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편도 제거해도 건강 전혀 문제 없어

이 교수는 “수술 덕분에 아이가 잠도 푹 자고 키도 많이 자랐다”는 말을 들었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이 교수는 2006년부터 편도 및 아데노이드 절제술의 일종인 ‘피타(PITA· powered intracapsular tonsillectomy and adenoidectomy)수술’을 소아 코골이 치료에 적용해 왔다. 소아 코골이의 가장 큰 원인은 알레르기 비염과 편도·아데노이드 비대다. 알레르기 비염은 약물치료·환경요법·면역치료를 적용하지만 편도 및 아데노이드 비대는 절제수술이 최선의 방법이다. 비대해진 편도를 아예 제거하는 것.  

하지만 소아의 수술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대다수의 부모는 ‘꼭 수술해야 하나’ ‘수술 후 재발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수술을 포기하려는 부모를 설득하는 것 역시 이 교수의 몫이다. 그는 “편도 및 아데노이드 절제술은 전 세계적으로 1년에 26만 건이 시행될 정도로 보편적인 수술”이라며 “편도질환으로 평생 고생하느니 가능하면 소아 때 수술하는 게 좋다”고 부모를 설득한다. 코골이는 단순한 잠버릇이 아니라 ‘아이가 힘들다는 몸의 표현’이라는 것. 이 교수는 “편도를 제거해도 건강상 별다른 영향이 없으며, 편도의 85% 이상을 제거하면 다시 자라지 않으므로 재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통증이다. 수술 후 통증은 아이에게 견디기 힘든 과정이다. 이 교수가 피타수술을 적극 도입한 이유다. 기존의 편도 절제술은 편도는 물론 편도가 붙어 있는 일부 피막·근육층까지 잘라냈다. 반면 피타수술은 미세절제흡인기를 이용해 피막·근육층을 보호하며 편도를 제거한다. 이 교수는 “그만큼 수술 후 통증·출혈이 덜하고 합병증의 위험이 적으며 회복이 빠르다”고 설명했다. 수술 후 3일째부터는 정상적인 식사가 가능하다. 수술은 마취시간을 제외하고 15~20분 소요된다.

“내 가족처럼 진료” … 초심 잃지 않아

하지만 아직까지 피타수술은 국내에서 대중화되지 못했다. 이 교수는 “포괄수가제로 묶여 수술비용이 한정된 상황에서 비싼 기구(미세절제흡인기)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피타수술을 고수하고 있다. ‘환자의 고통을 최소화하자’ ‘내 가족을 대하듯 치료하자’는 그의 진료철학의 연장선상이다. 축농증수술에 풍선카테터를 활용한 새로운 수술기법을 도입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교수는 “2006년 이 병원에서 처음 진료를 시작했을 당시 첫 환자의 접수증을 아직도 갖고 있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환자를 대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의 증표”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신기술 습득과 공부를 마다하지 않는다. 세 차례의 해외연수 중 두 차례는 대학이나 병원의 지원 없이 자비를 들여 다녀왔다. 공부에 대한 열망 탓에 수익을 포기하고 스스로 해외연수를 선택한 셈이다. 일본에서는 코골이를 유발하는 알레르기 비염을, 미국에서는 코 질환에 대한 각종 수술법과 안면성형을 공부했다. 이러한 열정 덕분에 병원 직원들은 가족에게 코 질환이 생기면 거리낌없이 이 교수를 먼저 찾는다.

 ‘환자에게 좀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라는 그의 신념은 안면성형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세웠다. 이 교수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귀·코·목뿐 아니라 얼굴 전반의 해부학적 구조에 익숙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면수술에 더 유리하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코 질환으로 인한 비중격교정술·축농증수술·피타수술부터 자가연골을 이용한 코 성형, 휘어진 코 모양 교정, 얼굴 암 제거 후 재건수술 등 얼굴에서 행해지는 모든 수술을 아우르겠다는 것. 그의 목표이자 새로운 도전이다.

오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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