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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현안 떠오른 '호주제 폐지' 이것이 궁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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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호주제 폐지가 여성계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 1백11개 여성단체는 2000년에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를 결성하고 지속적으로 운동을 전개해 왔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후 운동이 결실을 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선 국무회의에서 호주제 폐지를 긍정적으로 논의했다. 이에 따라 여성부.법무부.문화관광부 등이 참여하는 '호주제 폐지를 위한 기획단'도 구성됐다.

국회에서도 이미경(민주당)의원이 주축이 돼 민법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한국여성단체 연합도 오는 15일부터 호주제 폐지 사이버운동(www.no-hoju.or.kr)을 전개한다.

그러나 유림 쪽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가족법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공세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호주제가 무엇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주요한 궁금증을 알아봤다.

◆호주제는=민법상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구성하는 제도다. 호주는 가족을 통솔하거나 가(家)를 이어가는 사람, 즉 가장을 말한다. 호적은 사망이나 입양 등 개인의 신분변동사항을 기록한 문서로서 호주를 기준으로 정리된다.

◆호주제는 성차별?=현행 호주제에서 여성이 결혼을 하면 남편(또는 시아버지)의 호적에 이름이 올라간다.이 같은 제도가 '남성이 주인이고 여성은 종속적'이라는 생각을 심어준다고 여성계는 비판한다.

자녀가 태어나면 원칙적으로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아버지의 호적에 올리도록 돼 있는 것도 성차별이라고 지적한다. 어머니를 제외하는 것은 부모의 평등을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남편이 외도로 낳은 자녀는 아내의 동의 없이도 남편의 호적에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아내의 혼외 자녀는 반드시 남편의 동의를 얻어야 호적에 올릴 수 있다.

◆호주제가 남아선호를 부추긴다?=호주의 지위는 아들(손자)-딸-처-어머니-며느리 순으로 계승된다. 항상 남성이 여성에 우선한다. 세살짜리 아들이 어머니의 호주가 되는 일도 생긴다. 남편이 외도해 낳은 아들이 본부인과 그의 딸을 제치고 호주가 되기도 한다.

이런 제도가 남아선호 사상을 유지.존속시킨다고 여성계는 지적한다. 실제로 2000년 현재 여아 1백명당 남아의 비율은 1백10.2로 나타났다(통계청 자료). 태아가 딸이면 미리 중절해 버리는 일부의 세태 탓이다.

◆이혼.재혼.미혼모 자녀를 울린다=이혼한 가정의 자녀는 원칙적으로 아버지의 호적에 올라있다. 어머니가 친권과 양육권을 갖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경우도 그렇다.

남편이나 시집 식구가 아이를 뺏어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까닭이다. 자녀의 여권이나 의료보험, 은행관계 등 실생활에서도 어머니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아 불편과 스트레스를 겪는다.

여성이 재혼할 경우 전 남편과 새 남편의 동의를 얻어 자녀를 새 남편의 호적에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자녀의 성과 본은 생부를 따라야 한다. 자녀의 성이 새 아버지의 것과 달라 학교생활 등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미혼모 자녀의 경우 엄마의 성과 본을 따르고 엄마의 호적에 올릴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를 모를 경우라는 단서 조항이 있다. 때문에 아버지 이름란은 비워둬야 한다. 아버지가 모른 체 하고 있다 나중에 자녀라고 인정하면 무조건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그 호적에 올려야 한다.

◆호주제 폐지는 가족 붕괴의 지름길?=유림들은 호주제가 전통문화의 근간이 되며 서구사회에서 볼 수 없는 미풍양속이라고 주장한다. 가족의 구심점을 없애면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고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개인을 강조하다 보면 가족 중심적인 전통 문화가 전체적으로 무너지게 된다고 말한다. 이혼과 이에 따른 가정 파괴도 더 늘어난다고 한다. 호주를 부인하면 부권이 없어져 남성이 소외되며 이것이 가정 파괴로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계는 호주제 폐지와 이혼율 증가는 별 관계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호주제와 비슷한 제도를 갖고 있다 폐지한 일본이나 스위스를 예로 든다.

우리나라 보다 이혼율이 훨씬 낮다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호주제도가 오히려 부부 갈등을 조장하고 가족을 해체한다는 게 여성계의 판단이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사진 설명 전문>
지난 5일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분수터널에서 신나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어느 가족의 모습. 호주제는 미풍양속이라는 주장과 가부장적 제도라는 비판이 맞서고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없음). [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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