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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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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 집에 두 마리의 거미가 살지 않듯이 명희는 그런 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성인에개만은 혈통이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할아버지가 광산업을 할 때 갱이 무너져 3명의 인부가 생매장을 당한 이후, 가족은 운명의 등고선을 지킬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폐광하여 거리로 나앉게 된 한 가족의 비운같은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재앙이 3대로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피할 수 없는 일인 것같았다.
아예 없는 줄만 알았던 삼촌이 불쑥 나타나 할머니를 데려 간 일도 그랬다.
누구예요?
삼촌이다.
내게 삼촌이 있었어요?
그래 내가 숨겨왔다. 감옥살일 했지. 나쁜 짓을 한 게 아니었다. 네가 이해못할 일도 세상엔 있다는 것을 알아둬라. 인사드려.
첨 뵙겠어요, 삼촌.
삼촌이라는 사내는 시력이 무척 약한듯이 얼굴을 펴지 못하고 명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명희는 그 손을 잡지 않았다.
미안하다. 할머닐 돌봐드리느라 고생이 많았겠구나.
그게 아니라 할머닌 절 기르셨어요.
할머닌 내가 모셔야겠다. 자주 연락하마. 혼자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겠니? 허긴 넌 이제 다 컸으니 걱정은 필요없겠지만 말이다.
할머니 생각은 어떠세요?
명희는 낯선 남자와 할머니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네 원망이 없다면…. 고향에 갈 것을 미리 준비했었다.
할머닐 조금도 원망하지 않아요.
결국 혈통은 빗나가지 않은 셈이었다. 아무도 빈 방을 찾아와 줄 사람이 없었다. 전혀 구속이 없었고, 때문에 그를 찾아 보름에 한번씩 기차를 탈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밤마다 그의 꿈을 꾸었다. 그의 손엔 언제나 상여꽃이 쥐어져 있었다.
교회에서 우리 엄마의 정체를 알아냈어. 난 그게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그런데 그들이 날 신학교로 입학시켜 준 것을 부끄러워 하고 있어. 우리 엄마만 무당이다. 하얀 상여꽃을 잡고 주문을 외면 어떤 혼령도 찾아와 준댄다.
언제나 그가 상여꽃을 흔들고 있었다.
날 죽게 하려는거니?
아냐! 그냥 널 부르는거야.
병신같은 녀석, 그런 꽃은 다신 흔들지마라.
담배를 거푸 피웠다. 마약장에 스페어로 남은 데메들이 간혹 필요한 때가 있었다. 모든게 답답하기만 했다.
명희는 방학이 되었을 학교의 정경을 상상했다. 혜화동 성당을 문앞에 두고 아침마다 기도실에서 묵상대신 자신의 운명을 점쳐 보고 있다는 그에게 무엇을 도울수 있단 말인가?
벽에 기대어 또 한 개의 성냥불을 아래층으로 던져 보았다. 담배연기는 심한 구토감을 느끼게 했지만 혀와 머리를 잇는 신경들을 잘도 잘라 내었다. 천장이 빙글빙글 회전했다. 숨도 제대로 몰아 쉴수 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게 좋았다. 어둠 속에서 짐승처럼 웅크려 앉은 채로 새벽을 기다리려면 너무나 길고 지루하니까.
병원 일은 갈수록 엉망진창이었다.
수간호원이 병가를 올려 주겠다는 말을 했다.
대기실 세면대의 거울에 비친 젊은 여자는 이전의 명희를 전혀 닮지 않고 있었다.
새들이 몹시 추워하는 모양이었다. 방에 불을 지피지 않은지가 오래되어 새들은 부숭숭하니 털을 세우고 횃대를 잘 떠나지 않았다.
명희는 연탄불을 피웠다.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찾아 가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햇살을 보면, 그것도 손바닥에 살풋 내려 앉은 햇살을 보고 있으면 살 것같다. 햇빛은 해독제다. 데메롤을 원 앰플이나 팔뚝에 꽂아도 햇빛 속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햇살을 받으면 트림이 났다. 트림을 해야 눈물이 멎는다는 것을 명희는 알고 있었다. 무엇이든 삭일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명희는 창틀을 넘는 햇살로 인해 방안에 탄탄히 죄어 있는 거미줄이 한 가닥씩 풀어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의식이 뚜렷해지면 질수록 거미줄은 공간에서 잔영을 남기지 않았다.
성에가 얇은 막으로 유리창에서 한 뼘정도 자라나 있었다. 그것은 적은 양의 빛을 굴절시키고 있었다.
명희는 새장의 문을 열어 물통을 꺼냈다. 모이는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 그냥 두었다. 빨간 부리의 문조 한 마리가 둥지 앞에서 졸고 있었다.
병든 놈은 때를 가리지 않고 좁니다. 격리시켜 놔야지요.
점원은 날지 않는 새를 주의해야 한다고 명희에게 일렀다.
괜찮아지겠지.
물을 갈아 주면서 명희는 자신을 타이르듯이 중얼거렸다.
방 안의 공기가 따뜻해지자 새들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 조심스럽게 날았다.
세개의 조롱을 관통하는 빛이 새들의 날개에 부딪치면서 유채색의 공명음을 냈다.
제일 둔해보이는 것은 두쌍의 십자매였다. 둔한만큼 생명력이 있다는 거였다. 예민한 것과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은 역함수의 관계에 놓여있는 거라는 새가게 주인의 선굵은 목소리가 얼핏 기억 위를 날았다.
아직도 가스등이 불꽃을 달고 있었다. 밝은 공간에서 불꽃이란 산화현상 말고 더 무엇이 있을까?
명희는 밋밋한 동체에 달린 밸브를 닫아 불을 껐다.
힘겹게 오전 일이 끝났다.
식당으로 난 복도가 너무 컴컴해 보였다.
식당문을 밀다 말고 주춤 물러서면서 명희는 동행이던 수간호원에게 말을 꺼냈다.
점점 병원이 싫어져요. 그만 두고 싶어요.
웬일이니? 피곤한가 봐. 그러잖아도 조금 전에 결재를 받아 놨어. 좀 쉬면 나아질거야.
유리문의 저 편에서 그녀들이 밝게 떠들고 있었다.
아파서 그런건 아녜요. 그냥 병원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환자들이 보이면 왠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다른 부서로 옮겨 달라고 부탁해볼까?
마찬가질 거예요.
의사와 다툰 적이 있었니?
아뇨.
그럼?
제 기분을 어떻게 설명드릴 수가 없네요. 할 수 있다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그래라. 사흘이야. 병가가 끝난 뒤에 얘기하자.
고마와요.
대기실로 돌아온 명희는 가운을 벗었다. 떨어지지 않던 두꺼운 허물을 벗는 느낌이었다.
천장으로 올라간 스팀 파이프를 붙들고 거울 앞에서 명희는 머리를 빗었다. 한웅큼의 머리카락이 빠졌다. 거울속에 든 낯선 여자가 그것을 뜯어 내고 있었다.
문 가까이서 기척이 들렸다. 예민한 간호원은 대개 목발소리나 휠체어가 구르는 소리로 환자들을 정확히 구별할줄 알았다. 그들은 기프스 속에서 마비된 신경들이 다시 무게를 느끼고 운동감각을 되찾게 하기 위하여 언제나 복도의 끝과 끝으로 절름거림을 계속했다.
조금 나아지셨나요?
모르겠어요. 그런 것 같기도하고.
움직일 수 있는 환자들은 명희의 질문에 표정을 지어낼 줄 알았다. 그러나 침대에 사지를 묶이고 어금니에 가로목을 물린 환자들은 까맣게 졸아붙은 고통을 눈구덩이에 퍼올리며 온몸을 뒤틀었다. 그 소리는 두꺼운 벽을 통하여 한시도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직 복도 끝으로 돌아가는 서투른 걸음소리가 문 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명희는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비상계단을 택하여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가야할까? 생각하면 손이 시려 견딜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자잘한 관심으로부터 띨어져 나온지가 몇달도 채 되기 전에 명희는 자신의 귀로가 이렇듯 답답한 것이었던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를 만나면 갇힌 새를 보는 기분이었다. 늘 우울했다. 정문이 보이는 거리에서 그의 신앙을 날려 버리는 것도.
명희는 다시 그의 윤곽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대합실이 눈 앞에 보였다.
남쪽으로 내려 가는 기차의 마지막 종착지가 눈에 선했다. 어딘가에는 눈이 내려줄지도 모른다. 어딘가에는 이 보다 더 매운 바람과 텅텅 빈 들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만나지 않는한 나를 주체하지 못할거야.
사실 그랬다. 명희는 웃을 수 없었다.
나를 가져.
난 널 갖지 않아. 아무도 갖지 않겠다.
날 망가뜨리란 말야.
넌 망가져선 안돼. 이 바보야.
그가 난폭하게 명희의 얼굴을 때렸다. 명희는 속이 후련했다. 그러나 곁에 있던 그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파열되고 있었다.
다신 못만날거다. 오지마라. 와도 소용없을거다.
기차가 느린 속도로 들어 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비껴나면서 들고 있던 짐을 서둘러 챙겼다.
자그만 차창의 낯선 얼굴들이 할퀴듯이 명희의 시선을 스쳤다.
금속음이 멈추어지고 사람들이 출구로 쏟아져 나왔다.
명희는 기차에 올랐다. 갑자기 허기가 밀려 왔다. 사람들 사이에 서 있으면서 목이 마르지 않고 배가 먼저 고파오다니. 오랜만에 무엇인가를 먹을 수가 있을 것같아 기분이 좋았다.
명희는 비닐 봉지에 든 빵을 샀다.
신학교 정문에서 그를 기다릴 때도 배가 고파 빵을 사 먹어 본 적이 있었다. 마른 빵은 그의 손만큼이나 퍽퍽한 느낌을 혀 끝에 남겼었다.
배가 고프지만 않았어도 그냥 돌아갔을거야.
왜 왔니? 오지 말랬잖아. 널 파계시키려고 그래.
눈물겹도록 고맙구나. 하지만 네가 날 파계시켰다는 생각을 들게 하고 싶진 않아.
그는 퀭한 눈으로 무표정의 껍질을 벗으면서 웃었다.
학교에서 날 퇴학시키려고 하고 있어. 그들이 날 밀어 내기 전에 난 그들을 떠날거야.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믿는거니?
난 박제를 만들줄 안다. 옛날엔 아주 그걸로 살았어. 신에게 목숨을 기대는 것보단 날 안아 주는 강이 좋을 것같아. 지금은 비록 소리없이 죽어 가고 있지만 말야. 아직도 새를 잡을 순 있을거다.
뭘로 잡는데?
소량의 독물이면 된다. 새들에겐 안된 일이지만. 죽이는덴 엽총보단 덜 잔인한거야. 단속반에 걸리면 가게 되지. 갈 땐 가게 되더라도 난 한다.
그치만 새벽녘엔 그들에게 절대로 안걸려. 게으른 치거든. 공단에서 버리는 지독한 폐수는 암말도 못하는 새끼들이……. 낙동강에 발을 담가본적 있니?
기억에 없어.
명희는 마른 빵을 한 조각 떼어 그앞에 내밀었다.
가로수는 수척해 가고 있었다.
바람이 명희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이는 내 몸이니라. 너희는 받아 먹으라.
빵조각을 입에 넣으며 그가 중얼거렸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고개를 하늘로 세우고 그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가씨, 이 쪽에 좀 앉구려.
괜찮아요.
중년 남자가 명희에게 앉기를 권했다. 그 옆에는 다 큰 계집아이가 나이든 여자의 빈젖을 물고 있었다.
명희는 아이에게 빵을 떼어 주었다. 아이는 빵을 받았지만 입에 넣지 않았다.
의자의 난간을 잡고 흔들리면서 명희는 빵을 씹었다. 이는 내 몸이니라. 그의 음성이 뒷맛처럼 귓가에 남아 있었다.
낮은 구름이 들판에 깔려 있었다.
벼그루터기만 남은 들판 위에 간간이 허수아비가 보였다. 그것도 거꾸로 서있거나 반쯤 쓰러져서. 몸체가 십자가 같았다. 찢어진 비닐옷을 허공에 벗어 쥐고 그것은 난파중인 사람처럼 손을 벌려 팔랑거리고 있었다.
명희는 교문을 달려 나오는 그애게 수신호를 보냈다. 노여움이 밴 얼굴이었다.
토론을 하던 중이었어. 그들의 믿음이 교회를 살찌게 하고도 넉넉할거다. 비대한 교회는 가난한 마음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과는 토론할 이유가 없었는데…. 배고픔을 참으며 엄마와 상여꽃을 접은 적이 있지. 방에 꽃을 소복이 쌓아 놓고 잠을 자도 배는 더럽게 고팠다. 처음 엄말 속인 것은 교회에서 주는 빵을 얻어 먹기 위한 것이었어.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 그러고도 암말 않으셨어. 내가 십자가를 얻어 서랍에 감출 때도 엄마는 다 알고 말하셨지. 감출거 없다. 영혼은 감추어 지지 않는거다 라고 말이다. 엄마는 무엇이든 간에 혼이 있다는거였어. 다만 나쁜 마음으로 혼을 부르면 악귀가 나타나고, 선한 마음으로 부르면 좋은 영혼이 나타나 준다는 이론였지. 무엇을 믿건 그게 믿음이고 신앙이야. 신앙은 우열이 가려지지 않는 것이구.
기차가 터널을 통과했다. 명희는 천장에서 흔들리는 알전구의 낮은 광도로 사람들의 지친 얼굴을 보았다. 굉음이 차창을 뚫고 있었다.
눈 앞에서 아이는 귀를 꼭 막았다. 나목들이 빠르게 밀려왔다가 다시 기차의 꽁지에서 가라앉았다.
명희는 눈을 감았다. 아무 것도 보지 않는 것이 옳았다. 형상을 봄으로해서 거기에 감정을 매달고 더욱 위태롭게 남아야 한다면. 그러나 다 쓸데없는 일이다. 망막이 용서하지 않으니까.
기차는 간이역을 무수히 스쳐 지났다.
어느 역에서 측백나무 울타리 밖에 서있던 아이들이 손을 흔드는 것도 보았다.
역사를 지날 때마다 그 삭도에서 날이 저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산이 들판에서 지친 소처림 엎드려 있다가는 마침내 어둠에 갇혀 버렸다. 가끔 불빛조각이 차창을 핥았다.
다섯번째의 긴 철교를 지났다.
예의 강은 기억대로 공단의 불빛을 받아 은박지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명희는 다음 역에서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낯선 곳에서 기차가 멈췄다.
역사의 수은등이 철길을 내리쏘고 있었다. 휘감기는 불빚을 등으로 받으며 명희는 철길을 건넜다. 혼자였다.
역 앞의 어느 식당에서 요기를 했다. 문에 걸린 외등을 낚아채는 바람소리가 귀를 찔러댔다.
경운기 한 대가 역광장에서 시동을 걸고 있었다. 둔한 엔진 소리가 우렁우렁 울렸다. 운전대는 소년이 쥐고 있었다.
명희는 소년에게 길을 물었다.
공단을 도는 버스가 방금 끊어졌어요.
얼마나 머니?
두 시간은 걸어야 하는데. 걸어선 못 갈거예요.
그래도 길을 말해 주지 않으련?
…제가 태워 드릴까요? 도중에서 꺾어져야 하지만 거기까지 갈 수도 있어요.
그렇게 해주겠니?
전 거짓말 안해요. 소년이 눈짓을 했다.
명희는 짐받이칸에 올라 앉았다. 바람때문에 눈이 떠지지 않았다. 자꾸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집에서 보면 철교가 보인다. 모두 그걸 열 두 공굴이라 불렀지. 여름엔 또래들과 어울려 그 위에서 강으로 다이빙을 했었어. 기차가 올 때까지 햇별에 등을 태우고 있다가 가까이 오면 잽싸게 강으로 뛰어 내리는 짓이었지. 무섭게 달려 오는 기차를 겁먹는 애들은 없었어.그걸 보는 어른들이 겁을 먹지만말야.
보도블록에 쪼그려 앉아서 그는 바보처럼 웃었다. 뼛속이 텅 비어 있는 목소리였다. 그 땐 그를 안아 주고 싶었었다.
넌 아무 것도 할 수 없을거야.
그렇지 않대두. 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넌 겁장이야. .
명희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잡힌 손이 쇠갈퀴같았다. 앉은 채로였다.
사람들이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다. 곧 등화관제훈련이 있을거라고 가두방송이 터져 나왔다.
그만 가봐야 해.
명희는 화가 났다.
가지 마!
그러나 그는 손을 풀고 일어섰다. 육중한 철문이 그를 삼키는 것을 명희는 바라보고 있었다. 사이렌 소리가 길게 울리기 시작했다.
혹시 가는 길목에 공굴같은거 있니?
네, 열 두 공굴요.
틀림없는 사실일거였지만 명희는 안심이 되었다.
몇 살이니?
열 다섯요.
어른처럼 운전을 잘 하는구나.
아버지한테 배웠거든요.
소년은 뽐내듯이 속력을 더했다. 경운기는 의외로 잘 달렸다. 앉은 곳이 불편했지만 유쾌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무울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오….
먹던 빵으로 간단한 성찬식을 벌이던 날 명희는 그를 위해 노래를 끝까지 불려주었다. 그는 수첩의 종이로 종이학을 접어 명희에게 내밀었다.
이걸 가져라. 행운의 표상이야.
바람이 줄었다. 강 비린내가 옅은 기름냄새에 섞여 코에 스몄다. 불빚이 턱앞에 와 있었다. 사람들의 발소리도 가까이서 묻어 왔다.
다 왔어요. 고맙구나.
음악 선생님이시지요?
아니.
노랠 부르실 때 그럴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난…….
간호원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소년은 명희를 내리게 하고 머리를 돌려 오던 길로 달렸다.
정말 고맙다. 널 잊지 않을께!
한 옥타브 높은 소리로 명희는 어둠에 대고 외쳤다.
공단 가까이엔 여관이 많았다.
젊은 사내가 명희의 신발을 들어주며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서도 윤곽으로 검은 강둑이 보였다.
확신이 있었다.
영혼은 부르는거야. 믿음이 그를 움직이게 하지. 엄마가 꽃을 흔드는 것과 성찬식은 비숫한거야.
그의 말에는 무모한 신념같은게 배있었다.
명희는 벽에 기대어 수첩을 펼쳤다. 그가 준 종이학이 보고 싶어서였다.
여명 속이었다.
짙은 안개가 모든 것을 나직이 누르고 있었다. 밤엔 괴물처럼 보이던 공장의 굴뚝들이 무채색 바다 위에 돛으로 떠 있었다.
명희는 강가로 달려갔다. 안개냄새에 숨이 막혔다. 마른 갈대밭을 지났다. 그것들이 정강이를 때렸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가까이서 본 강물은 진한 갈색이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검은 진흙이 발목위까지 차 올랐다. 수렁 속이었다. 썩은 내가 풍겼다.
명희는 사방을 둘러 보았다. 회색 바다엔 아무 것도 떠 있는 것이 없었다. 바다에 잠겨 죽어 버린 것 같았다.
신경의 끝에 모이는 것은 바람소리거나 명희의 숨소리 뿐이었다.
너무 춥고 더러운 강이야. 여길 떠났던 새는 아마 다신 돌아 오지 않을 거야.
물에서는 여전히 뽀얀 김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명희는 구두를 벗었다. 발가락이 터지게 시렸다. 그래도 구두를 씻어야 걸을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생각보다 물은 훨씬 따뜻했다. 빨갛게 달아 오른 손조차 물 속에서는 견딜만했다. 작은 온기를 좋아하다니.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난 아무도 믿지 않아. 아무도 아무도….
그가 안개 속에 불쑥 나타나주리란건 망념일는지 모른다. 하나 그의 말대로 혼이 불려질 수 있는 것이라면…. 명희는 주머니에서 모로 접힌 새 한마리를 꺼내 들었다.
낮은 음계로 강이 떨었다. 명희는 그것을 강물에 던졌다. 마음이 아팠다.
넌 굶어 죽고 말거야.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멀리 공장 연기가 시커멓게 피어 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명희는 고개를 돌렸다. 안개 속에서 무엇인가를 보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분명 오리였다.
명희가 본 것은 한 키로 자란 갈대숲을 비껴 강줄기를 따라 파득이고 있는 한 마리의 청둠오리임에 틀림없었다.
난 너를 믿겠다. <끝>

<입선소감>
영영 열릴 것같지 않던 문이 열린 기쁨
영영 열리지 않을줄만 알았던 저쪽의 문이었는데….
기쁘다. 실족임을 알면서도 오기를 부려본 세월이 거울속에서 나를 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닦아도 결코 홀가분한 얼굴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배면에 숨어있던 또 하나의 낯선 사내가 튀어나와 거울을 가로막으며 나의 뺨을 후려친다.『너는 끝까지 유죄야. 어떤 형량으로도 네가 진 빚을 다 갚지 못한다. 실족이 죄라면 죄야. 이건 어쩔수 없다.』
그래도 후회하진 않겠다. 충분히 질긴 알몸이 있으니까.
부모님, 늘 용기를 주던 아내와 여러친구들, 그리고 충남 에스페란토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졸고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고맙습니다. 부족한 능력을 더욱 노력으로 채우면서 힘껏 써보겠습니다./약력 ▲54년 대전 출생 ▲대전공업전문학교졸 ▲대전 계용고등학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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