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초고층 신도시 사스때문에 백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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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새로운 전염병인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인구 6백80만명인 국제도시 홍콩의 도시계획을 바꿀 판이다.

홍콩 정부는 최근 홍콩 신제(新界)의 동남쪽에 건설 중인 신도시 장쥔아오(將軍澳)지구의 청사진을 백지화했다.

당초 72㏊(약 22만평)로 잡았던 건설 면적을 41~55㏊로 좁히고, 30만명으로 계획된 거주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 신도시는 1㏊(약 3천평)에 6천명을 거주시킨다는 원칙 아래 주변 인구까지 합쳐 48만명을 수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스 바이러스가 고층 빌딩의 인구 밀집지대에서 강력한 전염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초고층 신화'가 흔들리며 도시계획을 다시 짜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홍콩에선 지금까지 아파트든, 업무용이든 50층 이하의 빌딩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으나 사스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다.

홍콩의 총리격인 둥젠화(董建華)행정수반은 지난주에 발표한 '홍콩 재건 방안'에서 "사스 재발을 막기 위해 도시계획은 물론 빌딩 설계.유지 분야의 새로운 표준을 내놓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좁은 땅덩어리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초고층 건물의 건설을 장려해 왔으나 앞으론 위생.건강.청결을 감안한 건축을 유도하겠다는 선언이다.

그 대상으로 현재 건설 중인 장쥔아오 지구가 맨 먼저 수술대에 올랐다. 이어 옛 카이탁 공항의 부지에 세울 인구 24만명의 신도시 역시 건물 높이를 더 낮추고, 공원.관광타워.운동장 등의 면적을 늘려 환경친화적인 주거지로 만드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정부는 내부적으로 인구 밀집도를 낮추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인구 증가세가 둔화된 데다 부동산 경기가 엉망인 점도 작용했다.

건축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빌딩 건축을 양(量)에서 질(質)로 바꿀 호기"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홍콩의 인구 밀집도는 현재 1㎢(약 3만평)에 6천2백17명꼴"이라며 "사람이 가장 빼곡하게 사는 관탕(觀塘)지구는 5만5천77명까지 올라간다"고 지적했다.

사스 감염자가 단기간에 3백명 넘게 폭발적으로 발생했던 아모이 가든 아파트는 바로 관탕 지구에 있는 서민 아파트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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