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기 KT배 왕위전' 높이 날았으나 벽은 더 높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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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제39기 KT배 왕위전
[총보 (1~244)]
黑. 왕 위 이창호 9단 白. 도전자 옥득진 2단

옥득진 2단의 '무명신화'는 올 봄부터 여름까지 바둑계를 뜨겁게 달궜다. 과거 단 한번도 성적을 내지 못한 23세의 중고 신예가 군대를 다녀와서 돌연 파죽의 연승을 거뒀기에 더욱 화제였다.

예선에서 7연승. 그 과정에서 옥득진이 꺾은 기사는 조한승 8단(랭킹 5위), 윤준상 4단(랭킹 11위), 원성진 6단(랭킹 7위) 등 실로 쟁쟁한 얼굴들이다. 이리하여 도전권을 따낸 옥득진은 첫판에서 랭킹 1위 이창호마저 꺾는 대이변을 연출한다. 엎드려 있던 새가 한번 날아 천하를 뒤덮는 격이었다.

옥득진은 프로 6년차였지만 이창호와 대국할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창호 사범님과의 대국은 막연히 상상으로만 그리던 것이었다."

그러나 감미롭고 가슴 벅찬 시간은 여기까지였다. 1국에서 149수만에 불계승했던 옥득진은 2국에서 불계패했고 3국과 4국은 연속해 2집반을 졌다. 토털 스코어 1대3.

다시 신구미월령(新鳩未越嶺)이란 옛말이 떠오른다. 어린 비둘기가 재를 넘지 못하는 자연의 법칙과 아쉬움을 토로한 말이다.

하지만 옥득진이란 새는 그보다 훨씬 높이 날아올랐다. 다만 '이창호의 철벽'이 너무 높고 강했을 뿐이다.

이창호 9단은 이렇게 '왕위 10연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옥득진의 무명 신화에 가려 이창호란 존재는 잠시 잊혀진 듯 싶었지만 바람이 그치고 나니 이창호의 탑이 우뚝하다. 이게 승부세계다. 하지만 옥득진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정상 근처의 짜릿함을 맛본 사람은 결코 맥없이 가라앉는 일은 없으니까.

이창호 9단의 10연패를 축하하고 옥득진의 분투에 찬사를 보내며 39기 왕위전 연재를 끝낸다. (216-210,243-92)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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