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로 '逆 기러기 아빠' 신세…고달픈 해외 주재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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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중국 베이징에 있는 LG전자 중국본사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는 이진세(34)과장은 보름 전부터 중국판 '기러기 아빠'가 됐다.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위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자 부인과 아들을 서울로 보냈다. 이후 李과장은 매끼를 밖에서 사먹는 등 적지 않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李과장은 그러면서도 "한국에서 중국 내 사스 확산 상황을 크게 보도하는 바람에 현지인들이 한국 기업을 곱지 않은 눈으로 봐 세일즈 활동에 적잖게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화 바람과 조기 해외 교육 붐이 일면서 샐러리맨들은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일부 선진국에서 근무하는 것을 제외하면 해외 주재원 생활이 꼭 행복하지만은 않다. 사회기반 시설이 좋지 않은 개발도상국이나 때로는 신변 위협까지 감수해야 하는 중동.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서 일하는 주재원들은 적지 않은 고충을 호소한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무역관에서 근무하는 대한무역진흥공사 김규식(43)부관장은 "해외 근무를 여러차례 하면서 자녀들의 교육과 건강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은 게 한 두번이 아니다"고 이국생활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金부관장은 1989년 겨울 이집트 카이로에 부임하면서 당시 태어난 지 4개월밖에 안된 둘째 아이를 데리고 갔다. 한국 사람도 드물고 한국 방송도 접하지 못했던 곳에서 4년여 생활하는 바람에 둘째 아이가 귀국한 뒤에도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결국 외톨이로 처졌다.

金부관장은 "아이를 신경정신과에 데려갈 때는 어찌나 속이 상하던지 괜히 해외 근무를 했다는 후회도 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인도법인(HMI)의 뉴델리지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김철환(40)차장은 인도 근무가 3년째 접어들지만 아직도 주말이나 휴일에 가족들을 데리고 집 밖에 나서기가 겁난다. 치안상태가 안 좋기 때문이다.

그는 "백주 대낮에도 강.절도 사건이 일어난다. 떠돌이 개들은 대부분 광견병에 걸려 달리는 차에도 뛰어든다. 때문에 아들은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혼자하며 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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