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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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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산군이라 했다.「산의 군자」라는 뜻이다. 때로는 산신령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간사의 선악을 분별하는 영물로 여긴 것이다.
이런 호랑이가 88년 서울올림픽의 마스고트로 결정되었다.
한국 호랑이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이런 얘기가 있다. 두메에 사는 어느 부부가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노부를 찾아 나섰다. 캄캄한 밤길을 가는데 저쪽에서 불덩이 같은 것이 깜박거렸다.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보니 호랑이가 아닌가.
엄동에, 술 취해 인사불성이 된 노인을 이 호랑이가 품에 감싸고 앉아 있었다.
고노들이 즐겨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의 하나. 옛 민화를 보아도 호랑이가 즐겨 등장한다. 나무에 앉은 까치를 쳐다보는 모습이 주제. 이때의 호랑이는 맹수라기보다는 착한 서수다.
옛 사람들은 호랑이가 천년 수명에 5백살이면 백호가 된다고 했다. 은백색의 호랑이는 상상만 해도 영물 같다.
톱날 같은 이빨, 쇠갈고리 같은 발톱, 손바닥만한 혀, 불덩이 같은 눈. 한국 호랑이의 경우 키가 96cm에 몸길이 3m 내지 3m반, 몸무게가 2백mkg∼3백kg이나 되는 거물이다.
게다가 야행성동물로 하루 평균 80 내지 90km를 뛰어다닌다. 멧돼지, 사슴, 노루, 각종 짐승들, 곤충, 물고기까지 먹어치우는 식육목.
그러나 탐욕스럽게 먹어대는 것은 아니고, 때때로 절식을 할 줄 안다. 그런 동안은 토끼나 강아지가 호랑이의 등허리를 오르내려도 모른 체 한다.
호랑이의 자녀교육은 유별나다. 오늘의 극성스러운 어머니들의「과보호」자녀교육을 보면 호랑이는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우선 새끼 호랑이의 80%는 어미 호랑이의 과묵과 무관심 속에서 자란다.
산후 3개월이면 어미가 되새김질한 고기로 이유식. 4개월이 지나면 피가 줄줄 흐르는 생고기 맛에 눈을 뜨게 한다. 이때부터 높고 험준한 곳에서 뛰어내리는 고된 훈련기간. 물론 사냥도 가르친다.
양이나 개가 새끼 호랑이에게 젖을 물리는 때도 있다. 우화 같지만 호랑이에겐 그런 면도 있다.
호랑이는 아시아 특유의 맹수로 원래는 추운 북부지방의 동물. 동부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만주, 중국에서 남하해 한국, 인지, 수마트라, 스리랑카, 인도 등지로 확산되었다. 히말라야산의 7천m 고지에도 호랑이가 산다. 한국 호랑이는 시베리아 호랑이와 함께 가장 우람한 아종. 이승만 박사의 유명한 일화가 생각난다.
일본을 들렀을 매「요시다」(길전무)수상이 조크를 했다.『한국엔 아직도 호랑이가 많습니까?』이런 조크를 예사로 넘길 이박사가 아니었다.
『「가또」(가등청정)가 임란 때 다 잡아갔소.』
일제치하에 일본인들은 한반도형상을 토끼에 비유했었다. 일본은 마치 호랑이나 된 듯이.
전후 반세기도 안돼 우리는 이제 세계의 호랑이로, 올림픽 주최국이 되어「호랑이의 잔치」를 별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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