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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소망 김지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세모가 되면 해가 너무 빠르다고 한탄하면서, 그래도 새해가되면 뭔가 편안과 행복을 바라는 것이 인생이다.
20대에는 어서 30이 되어야 사람대접을 받을 것 같고, 30대에는 그래도 40은 되어야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사내도 50을 넘으면 세월 빠른 것은 여자와 다름이 없다. 그런데 내나이 50을 넘으면 세월 빠른것은 여자와 다름이 없다. 그런데 내나이 이제 갑년을 넘었으니 바뀌는 한은 넋두리라고만 할 수 없는 더 절실한 뭔가를 지니고있다.
요사이 몇햇동안, 새해아침에 바라는것은 명예도 공적도 필요없고 그저 조금 덜 바빠서 편안한 마음으로 주말을 쉴수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것 뿐이다.
지난해는 정말 뒤쫓기다시피 바쁜 열두달이었다. 새벽에 떠나 밤늦게 돌아오는 당일치기여행이 18회, 무슨 업적도 안되면서 마지못해 쓴 원고가 7백장, 거의 사흘에 한번씩은 시내로 나가야하는 갖가지회의, 서울로 찾아온 외국학자들의 대접, 그리고 뜻하지도 않은 문인화전-그러면서 이제2년째 되는 금주바람에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방법은 탤리비전의 코미디 보는것 뿐이다.
10월에 열린 예일대학에서의 한국미술심포지엄에는 논문과 슬라이드까지 만들어 보냈으면서 마지막단계에서 참석을 포기하였다.
뉴욕직행의 KAL기를 타면 20시간뒤, 밤11시에 뉴욕에 도착하는데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다가 자정이 넘고 다음날 뉴헤이븐으로 가서 심포지엄, 그리고 다시 뉴욕으로 나와 또 그 서울직행KAL를 타야하니 고혈압의 환갑노인 뇌출혈로 쓰러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12월 첫주의 일본에서의 학술행사에는 피치못할 사정이있어 나흘동안에 세번의 강연을 해야했고, 밤에는 거기사람들의 부탁으로 석장의 그림(?)까지 그려야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대북에 둘러 지금까지 보지못했던 고궁박물관을 3시간동안에 주착하였다. 몸은 몹시 피로했으나 그것으로 나의 오랜 아쉬움의 하나는 사라져버렸다.
12월의 분주는 누구나다 똑같은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회의들이 겹치고, 밀린원고들의 독촉이 오고, 써야할 인사의 편지들이 한두장이 아니었다. 그 바쁜틈을 일부러 내서 어느날오후 눈에 덮인 전곡리유적을 찾아갔다.
20만년전의 그 오랜유적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고 검푸른 한탄강은 태고의 시간들을 소리없이 흘러보내고 있었다. 한해의 나를 되새겨 본다고 나온 전곡리강가의 자기모습은 너무나 어리석고 초라하였다.
언젠가 텔리비전에서 인생의 허무를 지나는 말로 하였더니 불교신자인 나에게 먼 시골에서 성서를 부쳐왔다.
새해에는 좀더 수양하고 뭔가 깊이있는 일들을 했으면 한다. 글자가 큰 고판본들을 사서 조용한 방에서 혼자 읽어 내려가고 싶다. 대자연이 주는 지혜를 얻기위해 나무가 있는 시골길을 오래오래 걸어보고도 싶다. 그리고 그런일을 위해서 쓸데없는 세상의 인록과 일들을 떼어버리고 마음이 가라앉는 나만의 시간, 휴식하는 주말들을 올해는 꼭 확보해야 하겠다.

<서울대교수·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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