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등 불로소득 봉쇄 희망|조사 결과를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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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앙일보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의 결과를 살펴보니 오늘의 시점에서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시사 문제에 대한 국민의 반응이 재미있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 조사는 지도급 인사를 모집단으로 한 것이어서 국민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고, 또 우편 회수 방법을 썼기 때문에 응답자의 특성에 있어 약간의 편파성을 보이고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도층이라고 볼 수 있는 사회 유지들의 의사 내지 생각의 흐름은 발견된다. 특히 우리나라 사회 구조의 특징으로 미루어 정책 결정에 사회 유지들의 의사 반영도가 크다고 볼 때, 여기에 나타난 결과는 위정자의 정책 결정에 대한 각계 유지들의 지지도를 보여주는 것이니 만큼 자료 가치는 크다고 볼 수 있다.
우선 경제적 사정의 전망에 대해선 적지 않은 우려를 보이고 있다. 새해 살림에 대해 약 절반의 사람은 같은 수준으로 보고 있지만 나아질 것으로 보는 사람보다는 나빠질 것으로 보는 사람이 5%정도 많다. 그리고 88·9%라는 다수가 물가가 조금씩 계속 오를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수입 증가에 있어서도 64·7%가 물가 상승폭보다 적어질 것으로 내다보고있다. 생활을 압박하는 요인으로서도 물가고나 불황을 많이 들고 있다.
이와 같은 반응은 경제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 비슷하게 보이고 있다. 계층적으로 상충에 있는 사람들의 경제 문제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것은 국민 전체의 사기와 관계되는 중대 문제이고, 불투명하고 불안한 경제적 전망은 중진국 수준을 넘어서려는 우리들의 소망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 주고 있다.
정치 문제에 대한 반응도 회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1대 국회의원의 활동에 대해서 약30%가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반해 60%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국회 활동이 상층부의 요구를 반드시 대변하는 것이 아니기는 하나 이 비율은 학계 종사자의 그것과 같은 수치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상층이 아닌 사람들의 지지율 또한 낮다고 보아야 좋을 것이다.
이런 흐름은 지방자치제 실시 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67·4%의 사람이 지방자치제의 실시에 찬성하고 있다. 물론 그 중 대부분의 사람 (50·7%)은 재정 자립도가 높은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해이 한다고 못박고 있다. 말하자면 점진적인 지방자치제의 확대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 권력의 분산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 그것이 사회 유지들의 의견이고 보면 이제는 지방자치를 해도 좋을 정도의 민주적 역량이 길러졌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한때 정치 문제화 된 금리 인하와 금융 거래 실명제에 대한 반응을 보면, 현행의 은행 금리에 대해선 59·4%가 너무 낮다고 반대하고 있고, 실명제의 조속한 실시를 바라고 있는 사람은 반수 정도가 되며 (51·5%), 27·1%의 사람은 경기가 좋아진 뒤 서서히 실시해야한다고 보고있고, 18·1%의 사람은 실명제에 반대하고 있다. 이것은 정부가 실명제에 대해 결단을 못 내린 근거가 된 것이기도 하지만, 어떻든 이와 같은 정치적 조치들이 정치적 신임을 떨어뜨린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시책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론 레바논 파병 보류와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 실시, 공산권 국가와의 관계 개선 노력 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의 지지는 아니지만, 문제는 국민이 바라는 정책 방향은 국민들도 그 고충을 이해하고 선의의 협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용의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 문제에 있어서 국민들은 아파트 투기 현상을 몹시 싫어하고 있다. 아파트 투기가 일어나는 것은 66·7%의 다수의 사람이 정부 시책의 잘못 때문이라고 보고 있고, 투기에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법적 규제와 아파트 업자에 대한 규제 조치를 바라고 있으며, 어떻든 투기가 일어나지 않을 슬기로운 시책이 수립될 것을 갈망하고 있다. 불로 소득의 기회를 철저히 차단해 줄 것을 국민들은 바라고 있는 것이다.
택시 합승 금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그 시기가 조금 빠르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대안 없이 생활 관행을 깨뜨린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택시 합승을 금지해도 좋은 여건을 먼저 마련해주고 단행되었으면 보다 적극적인 지지를 얻었을 것이다. 정부의 규제라고 그것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규제할 것은 규제하고 자율화할 것은 자율화해야 한다는 우리의 사정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다만 무모한 규제는 삼가야 하고 정부의 규제 때문에 도리어 부작용이 일어나고 폐단이 일어나면 그것은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극히 당연한 요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중고교생의 머리·교복 자율화 조치에 대해서 이런 요구는 아주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자율화 조치에 대해 찬성·반대가 각각 20%정도 나타나 있고 58·3%가 어느 정도의 기준을 정했으면 좋겠다고 단서를 붙이고 있다. 이것은 고령자 층의 노파심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전반적인 흐름으로 보아 정부의 규제가 자율화로 옮겨지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적겠지만 무조건의 자율화로 인한 혼란은 없어야 한다는 신중론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관 주도의 경제 성장도 민간 주도로 옮겨져야 하지만, 그것도 방임적인 것이 아니고 착실한 단계적 민간 주도여야 하고 정치도 권력을 너무 집중화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여론조사에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진리가 우리 사회에서 체질화되기 위해서는 정부도, 그리고 국민도 너무 과욕을 보이지 말고 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아량을 보이고 양보하고 내실 있는 생활 질서를 확립해야 하며, 책임을 져야할 일에 대해서는 분명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야할 것이다. @@고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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