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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집중, 아세안 공략의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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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권선주 기업은행장

최근 한국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의 특별정상회의가 열렸고, 민간 경제협력기구인 ‘한·아세안 기업인 협의체’가 출범했다. 아세안은 경제 뿐 아니라 외교와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의 중요한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과 아세안은 이미 2007년에 FTA를 체결했고, 이후 교역규모가 더욱 확대됐다. 한국 교역 중 아세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또한 이 지역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아세안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교역규모 증가와 외국인 직접투자 확대 등으로 빠른 성장세를 지속해 왔다. 아세안 중에서도 특히 ‘메콩 경제 벨트’라 불리는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는 높은 성장 잠재력으로 인해 신흥경제권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풍부한 부존자원과 저렴한 인건비 등 중국에 이어 세계의 생산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또한 이미 거대시장으로 성장한 중국과 인접하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이러한 유리한 조건들로 인해 세계 각국의 투자가 집중되고 있고, 기업의 진출이 활발해 지고 있다.

 한국 기업 역시 메콩 경제 벨트를 중심으로 아세안으로의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기업의 진출이 활발해지고 사업영역이 확대될수록 자금조달과 글로벌 자금관리 서비스, 무역금융,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금융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특히 현지에서 자금조달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에게는 국내 은행들의 금융 서비스가 절실하다.

 국내 은행 입장에서도 수익기반 다각화와 성장 기회 확대를 위해 아세안으로의 진출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국내 은행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금융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이들 국가의 금융산업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무기로 글로벌 은행들과의 경쟁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세안 국가들은 아세안 역내에서 보다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위해 2015년말까지 금융시장을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일부 국가들은 중앙은행 전자결제시스템 등 기본적인 금융시스템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2015년말에 통합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향후 아세안 국가들의 금융시장 통합이 완성되면 이후에는 국내 은행들의 진출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이는 국내 은행들이 아세안 진출을 미룰 수 없는 이유이다.

 하지만 현실은 중국과 일본 등 다른 국가의 은행들과의 경쟁에 밀려서 신규진출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면 중국과 일본의 은행들은 어떻게 이들 국가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을까. 일본 은행들은 장기간에 걸쳐 현지 고객들과 강한 릴레이션십을 구축했고, 현지 금융기관에 대한 인수·합병(M&A)와 다양한 업무제휴를 통해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또한 현지 기업에 대한 여신 확대 전략을 채택하는 등 적극적으로 현지화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 중국의 은행들도 화교의 인적 네트워크 활용과 현지 은행 지분 인수 등을 통해 진출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 은행들도 적극적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현지화 전략을 강화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전략은 정부와 기업, 은행의 동반 진출이다. 일본 정부는 메콩 경제 벨트를 비롯한 아세안에 대규모 공적개발원조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프라 투자, 제도 및 행정 개혁, 교육 등 다양한 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위해 아세안에 공업단지 조성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은 일본 기업 진출의 발판이 되고 있다. 은행들 역시 정부의 적극적 원조와 기업 진출에 힘입어 이들 국가에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아세안 국가들에게 적극적인 원조에 나서고 있으며, 기업과 은행들 역시 정부의 지원 아래 성공적으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한국 정부도 아세안 등 여러 국가에 공적개발원조를 비롯해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지원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전략적인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아세안에 기업과 은행이 동반 진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선주 기업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