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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영화제 개막작 '칠검'의 쉬커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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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올해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인 ‘칠검’의 감독과 배우들. 왼쪽부터 전쯔단, 쉬커 감독, 양차이니, 김소연.

"무협영화의 매력은 미학과 철학입니다."

제62회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된 '칠검'의 쉬커(徐克.54) 감독을 1일(현지시간) 베네치아 리도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칠검'은 중국 청나라를 배경으로 도탄에 빠진 어느 마을 주민을 일곱 명의 무사가 구한다는 이야기. 한국.홍콩.중국 3국이 180억원을 들여 만든 액션 대작이다.

유럽.아시아 등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에 이미 영화가 팔려서일까. 감독은 자신감이 넘쳤다. "이젠 서구 사회도 동양 무술을 감상하는 눈이 생긴 것 같다"고 즐거워 했다. 세계 3대 영화제의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무협영화가 선정된 것 자체가 상징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어떤 영화인가.

"대만의 무협작가 량위성(梁羽生)의 소설 '칠검하천산'이 원작이다. 1970년대에 처음 소설을 읽었다. 30부작짜리 TV시리즈물로도 만들어진 작품이다. 대만과 홍콩의 나와 비슷한 세대는 누구나 이 작품을 안다. 오랫동안 다른 작가들이 스타일을 흉내 낼 정도였다."

-서양이 동양 무술에 열광하는 이유는.

"옛날 동양영화에선 주먹과 발만 썼다. 브루스 리(이소룡) 식의 액션이 주류를 이뤘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서양인을 매료시키기엔 한계가 분명했다. 그런데 검술 액션이 나오면서 달라졌다. 이제 서구 사회는 화려한 검술뿐 아니라 그 뒤에 깔린 철학과 정신에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한국과 중국, 홍콩이 손을 잡았는데.

"큰 변화다. 전쯔단(甄子丹).쑨훙레이(孫紅雷).양차이니(楊采泥).리밍(黎明) 등 홍콩 배우뿐 아니라 한국 배우 김소연도 출연했다. 아시아 시장이 확대됐고, 제작 규모도 커졌다. 아시아 각국의 영화 역량을 모으는 시도는 의미가 크다. 세계시장에서 아시아 영화의 파워를 키우는 결과를 가져오리라 본다."

쉬커 감독은 배우에 대한 주문이 많기로 유명하다. 연기와 촬영에 대한 계산이 철저하다는 얘기다. '영웅' '블레이드2' 등에 출연했던 전쯔단은 "영화 속에서 한국어 대사를 읊는 일은 너무 어려워 '악몽'이었다"고 전했다. 양차이니는 "촬영 때 직접 칼을 잡고 휘둘러야 해 힘들었다. 칼에 얼굴까지 베었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말했다.

-'와호장룡'의 리안(李安) 감독이나 '영웅'의 장이머우(張藝謨) 감독과 스타일이 다르다.

"무협영화는 무술 감독에 의해 스타일이 많이 바뀐다. 리안 감독은 위안허핑(袁和平), 장이머우 감독은 청샤오둥(程小東)을 주로 기용한다. 나는 '천녀유혼' '동방불패' 등에서 두 감독과 일한 적이 많다. 이번에는 다른 맛을 내고 싶었다. 과장되고 환상적인 액션보다 실제 있을 것 같은 사실적 액션에 주력했다."

'칠검'에는 한국배우 김소연이 중국에 노예로 팔려온, 조선 귀족 출신의 가련한 여인으로 나온다. 감독은 '프로의식이 있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처음 봤을 땐 우아하고 고귀한 느낌의 연기를 하는 배우라고 느꼈다. 함께 작업해보니 달랐다. 한번은 그에게 연기 주문을 하면서 2003년 사망한 메이옌팡(梅艶芳) 얘기를 꺼냈다. 메이옌팡은 죽기 전 마지막 콘서트에서 객석의 조명을 모두 켜달라고 부탁했었다. 마지막으로 관객의 얼굴을 일일이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김소연에게 그때의 심정을 느껴보라고 했다. 그는 내 의도를 제대로 간파했다."

감독의 칭찬에 김소연이 얼굴을 붉혔다. "유일한 한국 배우라는 사실에 매 순간 긴장했다"는 그는 "처음에 역할이 작아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으나 점점 비중이 커졌다"며 "감독님 덕분에 단 한 장면도 편집에서 삭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칠검'은 29일 국내 개봉된다.

베네치아=글.사진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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