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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In&Out 레저] 여기는 개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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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폭포

지난달 26일 새벽. 개성 시범 관광 참가자 500명을 태운 개성행 관광버스 14대가 자유로를 힘차게 내달렸다. 통일대교를 지나 임진강을 건넌 버스는 남측 도라산 출입사무소에 잠깐 들렀다가 휴전선을 훌쩍 넘어섰다. 도라산 출입사무소에서 개성 시내까지는 불과 10㎞ 거리. 회색빛 기와지붕 위에서 붉은 고추가 초가을 햇볕을 쬐고 있는 농촌 마을 몇 곳을 지나 버스는 바로 개성 시내에 들어갔다. 개성 시민들은 '고려약국' '군민식당' '리발관' 앞을 한가롭게 지나다 남측 버스를 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차도에선 자전거를 당연히 탈 수 있지만, 인도에서는 탈 수는 없고, 끌고만 다니게 돼 있다 한다. 북측 C.I.Q., 고려박물관, 선죽교 등 남측 관광객이 버스에서 내린 곳에는 어김없이 간이 천막을 이용한 북한 특산품 장이 섰다. 옥색이나 분홍색 한복, 또는 파랑.빨강.녹색 등 원색의 유니폼을 입은 개성 미인들이 남측 관광객들에게 웃음을 나눠줬다. 개성이 웃고 있었다.

개성=글.사진 성시윤 기자

하나 사람- 역시 남남북녀

"그냥 안내원 선생이라 부르시면 됩네다."

시범 관광 5호차에 동승한 북측 안내원 문광철씨. 그는 '몇 살이냐'는 질문에는 쉽사리 답을 하지 않았다. 북측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보통 자신의 나이보다 약간 '들어' 보이게 마련.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남북 사람이 서로 나이를 밝히고 나면 대개 북측 사람이 손아래다.

"사진만 찍지 마시고, 물건도 좀 사시라요. 물건 사신 분만 사진 찍으실 수 있습네다."

남측 관광객에게 물품을 팔기 위해 설치해 놓은 특산물 장터의 판매원들은 대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들이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고왔다. 그래서 남측 관광객들은 줄곧 이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고, 이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했다. 그들은 '싫다'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고 그게 고마워서 남측 관광객들은 지갑을 열었다.

그들은 또 개방적이었다. 황구렁이가 담긴 술병을 들어 관심 있게 보고 있자면 "남성들에게 아주 좋습네다"라는 농담도 곧잘 던졌다. 지난달 26일 개방된 특산물 장터 중에서는 대흥산성 장터의 판매원들이 가장 고왔다. 남성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인심을 많이 썼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 물건의 가격이 가장 비쌌다.

둘 상점 - 개성 깍쟁이?

"옛적부터 개성에는 가게가 많아, 타지 사람들이 개성 사람을 가게쟁이라 불렀는데 그 말이 변해 '깍쟁이'가 됐습네다. 그렇다고 개성 사람들이 깍쟁이는 아닙네다." 개성 시내 고려박물관에서 해설원으로 일하는 이옥란(40)씨 설명이다. 송도대학 역사학과 출신이라니 근거 없는 말은 아닐 게다. 어쨌거나 개성 관광에선 금강산 관광보다 훨씬 많은 가게를 접할 수 있다. 선죽교 등 유적지에서 식품이나 기념품 등을 파는 곳들이다. 거리에 있는 일반 가게에는 아직 들어갈 수 없다.

물크림(화장수).방석.인형.강냉이튀기(팝콘), 우황청심환, 그림, 인두화, 도자기, 부채, 염두릅(두릅을 소금에 절인 것), 화조병풍, 잣알 등 먹는 것에서 바르는 것, 감상하는 것 등 종류가 다양하다.

남측 관광객이 가장 많이 사는 것은 '개성고려인삼술'일 게다. 알코올 농도는 30%이며, 650㎖짜리 술 한 병이 이곳 표현으로 '여덟 달러'다(앞서 말한 대흥산성의 특산품 장에서는 14달러를 받는다).

음료수 등도 손쉽게 살 수 있다. '모란봉 코코아 탄산단물'은 영락없는 콜라 맛인데, 병도 코카콜라의 용기를 닮았다. 물건을 팔고 나선 일일이 판매 물품을 공책에 적는데, 손님이 요구하면 영수증도 '써' 준다.

셋 음식 - 약밥에 우메기

여행의 재미 중 하나로 '식사'를 빼놓을 수 없는데, 개성 관광에서도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자는 선죽교 인근의 '자남산려관'에서 개성 음식을 맛보았다. 1차 시범 관광에서 관광객들은 자남산여관.통일관.민족식당.령통식당 등 네 곳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이곳 연회장을 식당으로 쓰는데 8명 정도가 같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한다. 식탁별로 한복을 차려 입은 봉사원이 한 명씩 배치돼 음식을 가져다 준다.

대부분이 개성 특산 음식이며, 은행.밤.잣.대추.꿀.찹쌀로 만든 개성약밥(한국의 약식)이 대표적이다. 찹쌀을 반죽해 기름에 튀겨낸 우메기, 그리고 고사리.도라지.숙주 등 세 가지 나물을 한 접시에 담아 각각 갈색, 붉은색, 흰색 등 세 가지 색을 연출한 3색나물 등도 식탁에 올랐다. 편육볶음.잡채.송편.절편 등에도 젓가락이 자주 갔다. 음식은 맵거나 짜지 않으며, 달콤하면서도 담백하다.

식사에는 술이 빠질 수 없는 법이어서 령통술(개성 소주)과 봉학맥주가 테이블마다 몇 병씩 올려진다. 잔이 빌 때마다 봉사원이 잔을 그득 채워준다. 이때 짓궂은 관광객은 뚫어져라 봉사원을 쳐다보고, 수줍은 봉사원은 금세 얼굴이 붉어진다. 이것을 즐기다 관광객들은 곧잘 자신의 주량을 넘기게 된다.

넷 관광- 어, 매표소가 없네

개성의 유적지와 경승지 중 1, 2, 3차 시범 관광에서 선보이는 곳은 선죽교, 숭양서원.고려박물관(고려성균관).공민왕릉.왕건왕릉.박연폭포 등이다.

숭양서원은 정몽주 생가터에 세워진 서원으로 개성에 남아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고려박물관은 고려시대의 성균관을 활용한 것이다. 선죽교.박연폭포 등은 하나하나 굵직한 역사가 서린 곳들이니 곳곳에 맺힌 이야기를 풀어내자면 한이 없을 터다.

개성의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특이점 하나. 우선 유적지 입구에 매표소가 없고, 매표원도 없다. 그러니 입장권도 없다. 남한 관광객이나 외국인 관광객 가릴 것 없이 개성 관광은 사전 예약을 통해 단체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특이점 둘. 유적지의 안내 비문에는 김일성 전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방문 사실이나 이들이 이곳과 관련해 내린 교시 등이 빠짐없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가령 성균관 입구의 안내비에는 '위대하신 장군님께서 이곳을 찾으시어 성균관은 국보적 가치가 있으니 잘 보존하라고 가르치시었다'고 적혀 있다. 선죽교의 경우 안내 비석의 첫 문장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로 시작한다. 비석을 보고 있자면 이곳이 북한임을 실감하게 된다.

가깝긴 한데 비용이…

9월 7일까지 세 차례 계획된 개성 시범 관광이 모두 끝나고나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본격적인 개성 관광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관광도 개성과 금강산을 놓고 선택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개성 관광은 한동안 당일 일정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광화문에서 개성까지 거리가 70㎞ 정도로 가까운 편이기 때문이다. 남한 관광객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숙박 시설이 현재로선 개성에 부족하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개성 관광의 장점은 박연폭포를 제외하고는 방문지가 대부분 개성 시가지 내에 있어 금강산 관광과 비교해 보면 걷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약자나 장애인에게도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개성 관광은 참가비가 만만치 않다는 게 단점이다. 시범 관광의 경우 참가비는 관광요금(17만4000원)과 식대(2만1000원)를 합쳐 1인당 19만5000원이었다.

금강산 관광은 현재까지 당일, 1박2일, 2박3일 등 세 가지 일정으로 이루어져 왔다. 비용은 계절에 따라 당일 12만~17만원, 1박2일 16만~32만원, 2박3일의 경우 25만~57만원이다.

한편 금강산에는 냉면으로 유명한 평양 옥류관 식당의 금강산 분점이 1일 문을 연 것을 비롯, 식당과 숙박시설이 한층 다양해졌다. 옥류관 금강산 분점의 요리사와 접대원들은 평양 옥류관에서 파견된 사람들이다. 건물도 평양 옥류관 본관을 그대로 본땄다. '물랭면'이 12달러다.

또 신규 숙박 시설로 지난달 31일 금강산패밀리비치호텔이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방이 모두 96개인데, 한실(4~8인용), 콘도실(4~6인), 호텔실(2~4인) 등 객실 형태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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