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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황순원 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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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시 - 이재무 '물속의 돌'

동글동글한 돌 하나 꺼내 들여다본다

물속에서는 단색이더니 햇빛에 비추어보니

여러 빛 온몸에 두르고 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동글납작한 것이 두루두루 원만한 인상이다

젊은 날 나는 이웃의 선의,

반짝이는 것들을 믿지 않았으며

모난 상(相)에 정이 더 가서 애착을 부리곤 했다

처음부터 둥근 상(像)이 어디 흔턴가

각진 성정 다스려오는 동안

그가 울었을 어둠 속 눈물 헤아려본다

돌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물의 깊이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물이 그를 다녀갔을 것인가

단단한 돌은 물이 만든 것이다

돌을 만나 물이 소리를 내고

물을 만나 돌은 제 설움을 크게 울었을 것이다

단호하나 구족한 돌 물속에 도로 내려놓으며

신발 끈 고쳐 맨다

(문예중앙, 2004년 가을호 발표)

◆ 약력

▶1958년 충남 부여 출생 ▶83년 삶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섣달 그믐'(87년) '벌초'(92년) '시간의 그물'(97년) '푸른 고집'(2004년) 등 다수 ▶난고문학상(2002년), 편운문학상 우수상(2005년) ▶미당문학상 후보작 '물속의 돌' 외 24편

'돌에 상처 낸 물은 운다'
사물의 안쪽 꿰뚫어 노래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였다가, 엄마 몰래 맛난 것 챙겨주는 막내 삼촌이었다가, 골목에서 얻어맞고 들어오면 대신 녀석들을 때려주는 큰 형이었다. 이재무 시인은 늘 그런 느낌이다.

그는 삶의 애환과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투박하고 무뚝뚝하게 노래하는 시인이다. 늘 진지한 표정에서 "나는 그렇게 살아와서 그렇게 시를 쓴다"는 푸른 색깔 고집이 또렷이 읽힌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해 약삭빠른 계산 따위에는 영 숙맥이고 모양 꾸며 얼굴 내미는 일도 딴 사람 얘기다. 시인과 가장 닮은 시를 생산하는 시인을 꼽으라면 반드시 몇 손가락 안에 들리라. 심사위원도 비슷한 평을 내놨다.

'상당히 진지하고 믿음직스러운 시 세계를 보여준다. 조탁형의 시인은 아니지만 작품 하나하나에 완결성이 있는 시인이다. 추상적인 담론 보다는 사물의 안쪽을 묵묵히 투시한다(이혜원).'

시 '물속의 돌'을 보자. 본래 모진 상이었던 돌이 오랜 세월 어둠 속에서 몰래 울며 둥근 상을 지니게 됐다. 그래서 돌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물의 깊이가 새겨져 있다. 여기서 끝나면 이재무의 시가 아니다. 사람이 부딪히며 살다보면 피치 못하게 상대에게 상처를 남긴다는 이치를 그는 온몸으로 알고 있는 시인이다. '돌을 만나 물이 소리를 내고'. 시인은 말한다. 물도 소리를 내 울었다고. 돌에 상처를 남겼지만, 아니 남기고 말았기에 물은 울고 있다고.

작품 소개를 부탁하자 거센 충청도 억양으로 "몰라서 물어? 그냥 알아서 써~"라고 답한다. 늘 그런 식이다. 시단에 발 디딘 지 스무해가 넘었지만, 그 세월 동안 문단의 온갖 궂은 일을 맡아왔지만 그는 좀체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언젠가 만취한 상태에서 "내가 소월시문학상 우수상만 네 번 받은 시인이야"고 중얼거린 일을 기억한다. 누구보다도 생의 상처를 보듬어온 시인이 정작 자신의 상처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이재무는 그런 시인이다.

손민호 기자

소설 - 임철우 '나비길 - 황천이야기 2'

◆ 작품 소개

'황천읍'이라는 산간 마을 초등학교에 젊은 총각 선생이 부임한다. 그는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특이했다.흔치 않은 '기병대'란 이름이었고, 마을에 나타날 때 눈부신 흰색 차림이었다. 무엇보다 숱한 나비들이 그 주위를 맴돌았다. 부임하고 며칠 지나면서 작고 좁은 동네에선 그에 대한 추문이 하나씩 생겨난다. 추문은 또 다른 추문을 낳고 원래 추문은 사실로 굳혀진다. 결국 소설은 파국으로 끝을 맺는다. (문학동네 2005년 여름호 발표)

◆ 약력

▶1954년 전남 완도 출생 ▶81년 서울신문으로 등단 ▶장편 '붉은 산 흰새'(90년) '그 섬에 가고 싶다'(91년) '봄날'(97년) '백년여관'(2004년) 등, 소설집 '아버지의 땅'(84년) '붉은 방'(88년) 등 다수 ▶한국창작문학상(85년), 이상문학상(88년), 단재상(98년)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나비길-황천이야기 2'

동성애자로 몰리는 선생 …
집단의 폭력, 상징적 묘사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좋을까'라며 운을 뗀 건 사실 어디서부터 시작해도 무방하다는 얘기일 터다. 지금부터 펼쳐놓을 이야기 보따리를 기대하시라는 투는 전설이나 신화의 모두(冒頭)를 닮았다. 전설은 늘 상징적이다. 소설의 첫 문장부터 작가의 노련한 면모가 드러난다. 중편 분량의 소설은 거대한 상징의 덩어리다.

황천읍이라는 산간 마을. 초등학교에 생물 선생이 새로 부임한다. 그는 순결한 영혼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처음 마을에 나타났을 때 그는 온통 흰색으로 눈부셨으며, 그리스 신화에서 영혼을 상징하는 나비(프시케)를 몰고 다닌다. 상징적 장치는 이외에도 숱하다. 군대와 학교라는 공간은 폭력적인 제도를 의미하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늪은 동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부추긴다. 마을 이름도 범상치 않다. 누런 냇물이란 뜻의 '황천(黃川)'은 옛날 금광이 있던 곳. 한때 인간의 욕망이 들끓었던 공간이었음을 암시한다. 게다가 저승을 뜻하는 황천(黃泉)하고도 동음이다.

소설은 이 작은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다룬다. 수업시간에 나비의 변태 과정을 설명하던 선생은 학생들에게 '변태선생'으로 불리고, 여러 사건에 얽히면서 결국엔 동성애자로 몰린다. 선생은 한번도 변명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미 동네에서 그를 동성애자로 낙인찍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집단의 폭력에 의해 개인성이 파괴되고 끝내 추방되는 과정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의 의도는 성공적이었다. 심사위원들은 '파격적인 소재를 서정적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문장이 돋보인다. 타자화한 소수자가 배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현실적으로 잘 드러냈고 이미지로도 잘 형상화했다(강상희)'고 입을 모았다. 작가는 주인공의 동성애 관계를 모호하게 처리했다. 분명 의도가 숨어있으리라. 이유를 물었더니, 웬걸, 이유를 되물어 온다. "독자를 향해 곤혹스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주인공은 과연 동성애자였을까?"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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