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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전쟁 찬·반 격돌 현장 르포] 보수·진보 나뉜 '미국판 DMZ'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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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크로퍼드 = 강찬호 특파원

끝없이 펼쳐진 미국 텍사스의 목초지. 그 한가운데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부의 사진이 세워져 있다. 부시 대통령이 휴가를 보냈던 한촌(閑村) 크로퍼드의 풍경 중 하나다.

지난달 30일 오전 크로퍼드에서 7마일쯤 떨어진 '부시의 목장'으로 가던 중 부시를 지지하는 이곳 주민이 세워 놓은 피켓들이 눈에 띄었다. "계속 가자(Stay the Course)" "여긴 부시의 나라다" 등등. 그러나 부시의 목장 3마일 앞 교차로에 이르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반대의 피켓들이 줄지어 있다. "부시여, 신디를 만나라" "전쟁은 안 된다." 길섶엔 수백 개의 흰색 나무 십자가가 꽂혀 있다. 거기엔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 밑엔 희생자의 소지품이 묻혀 있다고 한다. 여기가 바로 '캠프 케이시'다. '평화의 어머니' 신디 시핸의 아들 케이시 시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케이시는 지난해 이라크에서 숨졌다. 그 사이로 40~50대 수십여 명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캠프 케이시'의 반대편 풍경은 사뭇 다르다. 전쟁을 찬성하는 플래카드들이 이곳저곳 걸려 있다. 부시 지지자들이 맞불 시위를 하는 '캠프 리얼리티'다. 거긴 반전(反戰) 캠프보다 한가한 모습이다. 60~70대 노인 서너 명과 30대, 50대 남성이 차분히 앉아 있을 뿐이다. 두 캠프 사이엔 폭 3m의 2차선 도로가 있다. 도로 가운데의 노란색 줄이 두 캠프의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다. 양 진영의 누구도 그 선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캠프 리얼리티에서 20일째 시위를 해 왔다는 아케프 타이멘(54)은 "우린 도로를 비무장지대(DMZ)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기자는 양쪽의 사람들을 만나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런데 답변은 180도 달랐다.

^(기자) "전쟁 전망은 어떤가."

-"이라크전은 제2의 베트남전이다. 속히 철수해야 한다."

-"이라크전은 중동에 민주주의의 씨를 뿌리기 위한 것이다. 희생을 참으면 승리한다."

^(기자) "이라크 민심을 어떻게 보나."

-"미국의 엉터리 점령 정책으로 이라크인들이 고난을 겪고 있다."

-"이라크 어린이들은 학교에 보내주는 미군을 형처럼 따른다고 한다."

양 캠프 사람들에 따르면 시핸이 지난달 6일 농성을 시작한 지 열흘 정도 지날 때까진 분열 양상이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시핸의 시위가 언론에 보도되고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보수와 진보의 대결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한다. 타이멘은 "지난 주말 수천 명이 양쪽으로 갈라져 대치하자 경찰이 출동해 도로의 노란 선을 넘는 사람은 무조건 체포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크로퍼드 시민은 "냉전 시대에 독일 베를린 장벽에서나 볼 수 있던 장면이 미국 대통령 별장 앞에서 연출됐다"며 "대통령이 휴가 중인 곳에서 국민이 편을 갈라 싸우는 모습은 아주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크로퍼드 = 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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