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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난간 무너지며 수백명 강에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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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31일 이라크 티그리스강에서 10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 현장에서 수천 명의 사람이 생존자들을 찾기 위해 강가에 몰려들고 있다. 앞서 다리 난간이 무너지는 바람에 수백 명의 시아파 순례객이 강으로 추락했다. [바그다드 AP=뉴시스]

헌법안 통과 강행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이라크에서 31일 사상 최악의 유혈 참사가 발생했다. 수니파 저항세력의 공격과 추가 자폭테러 소문에 놀란 시아파 순례객이 최소 650명 이상 사망했다고 이라크 보건당국이 발표했다. 한편 알아라비야 방송을 비롯한 외신들은 사망자 숫자가 800~1000명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1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시아파들은 이날 시아파 성자인 7대 이맘 무사 카딤을 기리기 위해 바그다드에 운집했다.

◆ 사건 경위=이날 참사는 수니파 저항세력의 박격포 공격으로 시작됐다. 저항세력은 시아파 순례객의 목적지인 카디미야 지역의 이맘 무사 알카딤 사원 주변에 박격포탄 4발을 발사했다. 이 폭발로 사원에 운집해 있던 순례객 중 7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다쳤다. 그러자 미군 헬기가 저항세력을 사살하기 위해 박격포 발사 지점을 향해 기총사격을 가했다.

가장 큰 피해는 사원으로 향하는 티그리스강 위 알아이마 교각 위에서 발생했다. 수만 명이 밀집한 순례객 대열에 '폭탄을 두른 자폭테러범이 있다'는 소문이 입과 입을 통해 순간적으로 퍼졌다. 이 와중에 누군가가 "다리 위에 자폭테러범이 있다"고 외치자 사람들은 일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사람들을 앞 다투어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성과 어린이들이 발에 밟히고 이 와중에 다리 난간이 무너지는 바람에 수백 명이 티그리스 강으로 추락했다고 이라크 내무부는 발표했다.

◆ 정부 대책=사건 직후 이브라힘 알자파리 총리는 사흘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총리는 또 사건 수습을 위해 군경의 신속한 대처를 촉구하고 미군의 구조지원도 요청했다. 미군은 또 수십 대의 헬기를 파견해 구조지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강물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구조작업은 지연되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은 "사망자 중 20여 명의 시체에서 화학물질이 발견됐다"며 "화학물질이 테러에 동원됐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 사망자들은 알카딤 사원 주변에서 나눠준 음료수와 음식을 먹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불안감이 원인=이번 유혈 참사는 이라크인들 사이에 팽배한 불안감과 테러에 대한 공포감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지난해 1월 총선 이후 불거진 시아파.수니파 간의 갈등은 지난달 28일 다수파인 시아파의 일방적 헌법안 통과로 한층 격화되고 있다. 헌법안 통과 다음날에도 총살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니파 시체 수십 구가 목격되기도 했다. 수니파는 시아파가 주축이 된 이라크 군경이 수니파 주민들을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시아파는 수니파 과격세력이 시아파를 공격하고 있다며 테러세력 소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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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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