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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회의의 결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세계의 관심을 모아온 빈 석유수출국기구 (OPEC) 각료 회의는 배럴 당 34달러인 현 기준유가를 동결하고 산유 쿼터만 1백만 배럴 증량키로 합의했다.
이 같은 회의 결과는 한마디로 위기에 처한 OPEC회원국들의 결속을 공동 이해라는 축을 중심으로 가까스로 재결합하는데 일단은 성공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 같은 기준 유가 동결은 현재의 원유 수급 상황이나 회원국들의 사정으로 보아 잠정적일 수밖에 없으며 OPEC문제의 해결이 아닌 이월에 불과한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잠정적이나마 현재 유가 체계의 대강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거의 전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니셔티브에 의한 것으로 짐작된다. 현실적 여건으로 볼 때 현재의 기준 유가는 거의 유지될 수 없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그 가장 큰 배경은 물론 세계 경기의 장기 침체와 에너지 절약에서 찾을 수 있다. 한때 하루 5천만 배럴을 넘어섰던 자유 세계의 석유 수요는 81년 4천8백만 배럴로 줄어들었고 올해는 다시 4천5백만 배럴 수준으로 삭감하고 있다. 내년의 경기 회복조차 불투명해 설사 2∼3% 실질 성장이 이루어 진다해도 총 석유 수요는 올해 수준을 넘지 않을 것 이 전문 기관의 예측이다.
수요가 장기적인 안정 내지 감소 추세에 진입하고 있는데 공급 사정은 매우 불안정하다. 가장 큰 요인은 수요 감퇴에 따른 산유국의 석유 수입 감소지만 그에 더하여 극도로 경직된 국제 금융 위기가 산유국들의 국제 수지에 심각한 장애를 주고 있다.
특히 전비 조달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이란, 이라크가 산유 쿼터를 훨씬 넘는 생산을 지속하고 대규모 공공 사업을 벌이고 있는 리비아, 나이지리아 등이 현물 시장 덤핑에 가세함으로써 수요 감퇴와 공급 과잉이 겹친 상황이 계속 되어 왔다. 이런 상황의 지속은 당연히 현물 시세의 연쇄적 하락을 몰고 와 한때 런던, 로테르담 현물 시세는 배럴 당 28달러까지 떨어졌다.
따라서 기준유가 34달러의 유지는 거의 무의미하게 되었고 현물 시세의 하락과 함께 산유 쿼터조차 유명 무실해졌다. 이번 빈 회의는 이 같은 상황에서 OPEC의 존립과 결속에 중대한 고비가 될 수 있는 모임이었다. 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설득과 위협이 가져다준 기준 유가의 동결은 최소한 OPEC의 붕괴를 저지하는데 일단 성공했으나 타협안으로 낙착된 쿼터의 증량은 OPEC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소지를 안고 있다.
쿼터 증량에 따라 지난 3월 결정된 하루 1천7백50만 배럴 생산은 1천8백50만 배럴로 늘어났지만 국제 수지 압박이 심각한 이란, 리비아 등으로서는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증량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회의가 총량 증대에만 합의했을 뿐 회원국별 쿼터에는 이견 조정이 실패한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따라서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차피 새로운 협의와 조정이 불가피하게 재론될 수밖에 없으며 현물 시세는 여전히 불안정한 약세권을 헤맬 것이 분명해졌다.
이런 회원국 사정을 고려할 때 사우디아라비아가 어느 선까지 감산을 유지해 낼 수 있을 것인지가 관심의 초점이 된다. 이번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 7백만 배럴 생산을 고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란-이라크 전쟁이 종식되고 이라크가 다시 전쟁 복구 등의 이유로 증산의 필요성이 증대 될 경우 회원국별 쿼터는 다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에 더하여 점차 그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비 OPEC산유국의 생산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된다.
따라서 이번 빈 회의의 합의는 내년 6월 이전의 또 한 차례 협상을 불가피하게 만든 과도기적 합의로 볼 수 있다. 우리로서는 이런 공급 과잉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를 예의 주시하고 에너지 정책을 신축성 있게 조절하는 탄력성을 유보해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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