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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공부] 선행 학습, 능력에 맞춰 시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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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학습은 이미 대세다. 서울 대치동 입시전문가 김은실씨는 "선행 학습은 이미 필수"라며 "중학교나 고등학교 입학 직후 보는 시험에 장차 배울 내용이 담기는 일이 있다 보니 (선행 학습을 위한) 학원에 다닌 아이들의 성적이 좋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곤 "6개월 정도 선행하는 건 기본이고 1~2년을 '뺀다'(미리 가르친다)는 학원도 있다"고 전했다.

▶ 전문가들은 선행 학습을 할 때 무작정 진도를 앞서 나가기보다는 개념과 원리를 충분히 익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27일 서울 대치동 학원에서 학생들이 수학 선행 학습을 하고 있다.김태성 기자

◆하위권 학생에게 선행 학습은 독=전문가들은 선행 학습을 하는데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한두 학기에 배울 내용을 불과 한두 달 만에 끝내는 식의 선행 학습은 소수의 상위권 학생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에듀플렉스 이병훈 교육개발본부장은 "요즘 너나할 것 없이 다 선행 학습을 하는데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배워야하기 때문에 상위권이며 학습 의지가 강한 학생들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위권 학생은 1년 정도 선행 학습을 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했다. 대신 중위권 학생의 경우엔 2~3개월 정도만 선행 학습을 하고, 하위권 학생은 선행 학습보다는 복습에 치중할 것을 권했다. 진학컨설팅 홍송이 학습컨설턴트도 "하위권 학생에게 선행 학습이 독이라고 말해줄 때도 있다"며 "그런 학생의 경우 선행 학습을 하더라도 자신있는 과목 한두 개 정도만 해 자신감을 갖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더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교원대 수학교육과 신현용 교수는 아예 "심화 학습이라면 몰라도, 진도를 빨리 나가는 속진(速進)식 선행 학습은 어떤 아이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과학고 이경운 교무부장도 "(선행 학습 때) 잘못 배우거나 구멍난 부분이 많아 선생님마다 바로잡아주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을 정도"라며 "선행 학습을 하려거든 개념이나 원리를 충분히 익힐 수 있는 대학교재로 하라고 권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한 학기 또는 1년간 배울 분량을 불과 한두 달 만에 끝내는 것을 걱정한다.

지나치게 속도를 내려다보니 틀에 박힌 암기식이 되거나 개념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문제 풀이식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번 배웠다는 이유로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착각, 학교 수업을 지루해하거나 자발적 학습 능력을 잃기도 한다는 것이다.

김은실씨는 "서술형 평가가 확대되고 통합교과서형 논술이 도입되는 상황에서 단순히 '진도를 빼는' 방식의 선행 학습은 위험할 수 있다"며 "원리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이의 스타일도 참고해야=성적이 좋은 아이라고 해서 선행 학습 효과가 높은 것만도 아니다.

홍송이 학습컨설턴트는 "아이의 성향에 따라 선행 학습 방식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이가 앞서 나가고 싶어하거나 장차 어떤 걸 배울지 궁금해 하는 스타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선행 학습을 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무리한 듯싶지만 오히려 도전해 보고 싶은 욕구를 느끼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기초에 소홀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반대 스타일인 아이의 경우 지나친 선행 학습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갑자기 어려운 문제를 주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거나 질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선행 학습도 단계적으로 하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선행 학습 방식도 달라야 한다. 아이가 연대기표나 도표.그래프 등을 보길 즐긴다면 정보를 통합적으로 지각하는 스타일이다. 먼저 전체적 흐름이나 틀을 보여주면 흥미를 갖고 학습에 임할 확률이 높다. 교과서를 미리 공부할 때 목차부터 보여주는 식이다. 반대로 그래프만 봐선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느냐"고 시큰둥해하는 아이라면 구체적 내용부터 바로 들어가는 게 낫다. 홍 학습컨설턴트는 "선행 학습이 무조건 진도를 나가는 것이란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한다"며 "관련 주변 도서를 읽게 하는 것도 좋은 선행 학습"이라고 했다.

고정애 기자<ockham@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사례 1.

중학교 3학년인 윤모(14)군. 그는 명문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다. 공부를 하려는 열의가 있다. 그래서 이미 고등학생들이 보는 수학·영어 참고서는 물론, 토플도 배우고 있다. 힘들지만 다른 학생들을 앞서 나가는 게 즐겁다.

#사례 2.

고교 2학년인 조모(17)군. 그는 지난해 무려 학원 8개에 다녔다.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국어·영어·수학 별로 두 개씩, 물리·화학 과목 한 개씩 수강했다. 대부분 내신 관리를 위해 한두 학기 미리 배우는 과정이었다(선행 학습). 안 다니면 뒤처질까봐 불안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학원 수강을 네 개로 줄였다. 내심 안다고 여겼던 게 진짜 아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공부할 시간을 늘린 뒤 그의 성적은 오히려 최상위권으로 올랐다.

#사례 3.

교육학자 A씨. 그는 3년 전 선행 학습이 장기적으론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 오히려 학생의 흥미를 줄이거나 자발적 학습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요즘 그걸 직접 체감하고 있어 씁쓸하다. 중학교 1학년생인 아이가 원해 선행 학습을 시켰는데 아이가 요즘 “공부하는 게 지겨워요”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습 의욕이 떨어진 것은 물론, 책을 보거나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 하지도 않는다. 개념 이해는 뒷전이고 문제만 풀려 한다. “아이가 원해서 시켰는데…”라며 그는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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