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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감자꽃을 피워요] 下. 감자에 승부수 던진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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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월드비전 대표단과 북한 인사들이 지난 6월 평양 농업과학원 온실에서 수확한 씨감자를 들고 활짝 웃고 있다.왼쪽부터 이용범 서울시립대 교수,강신호 농업과학원 농업생물학연구소장,박창민 월드비전 사업본부장,이일섭 농업과학원 대외과학기술교류처장. [월드비전 제공]

2003년 9월. 평양에 들어간 국제 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방문단은 한 인사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북한의 씨감자 생산사업에 관여해 온 이경식 농업과학원 부원장이 그해 7월 일약 내각 농업상으로 발탁됐기 때문이다. 그는 감자 전문가로 월드비전의 기술 자문역들과 얼굴을 맞대왔다. 북한의 식량 문제에 비춰 보면 농업상은 막중한 자리다. 그뿐만이 아니다. 월드비전과 함께 씨감자 생산사업을 맡아온 모 인사는 5년 만에 직책이 두 단계나 뛰어올랐다. 이 사업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평가와 관심도를 알려준다.

북한의 농업 시설과 농장엔 감자 관련 당 구호가 곳곳에 적혀 있다. '감자농사에서 전환을 일으켜 식량 문제를 풀자''감자를 주식으로 식생활을 개선하자'…. 월드비전 박창민 사업본부장은 "일선 현장을 찾아가면 북한 당국이 얘기하는 '감자 혁명'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감자 증산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전면에 섰다. 1998년 10월 1일. 그의 양강도 대홍단 감자연구소 방문은 북한 밭농사 구조 변혁의 신호탄이었다. 그는 이날 "감자농사를 통이 크게 잘해 보아야겠다. 감자농사를 잘해 우리나라를 아시아의 감자왕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감자 재배 확대를 지시했다. 그러면서 "감자농사를 대대적으로 하면 살 길이 열리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며 "이제부터는 감자농사 사령관이 되려 한다"고 했다.

이 언급은 56년 1월 김일성 주석의 서한과 비교된다. 당시 평안남도 당위원장 앞으로 보낸 서한은 "강냉이(옥수수)는 밭곡식의 왕"이라며 옥수수 재배를 장려하라고 지시했다. 옥수수가 쌀에 버금가는 주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이 서한에서 비롯됐다.

그런 점에서 감자는 '김정일 시대'를 상징한다. 그의 대홍단 방문 이후 북한의 옥수수 밭 상당 부분이 감자 밭으로 바뀌었다. 97년 4만5000정보에 불과했던 감자밭은 20만 정보로 늘어났다. 반면 옥수수밭은 70만 정보에서 50만 정보로 줄어들었다. 현재의 추세에 미뤄 감자밭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원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김일성 주석이 옥수수로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점에 비춰 보면 감자 중시 정책은 북한 농업에서의 일대 방향 전환"이라고 말했다.

위로부터의 감자 혁명은 하부 조직의 변화를 몰고왔다. 감자 증산을 위해 각 군의 1개 협동농장에 1개의 감자생산 전담 분조가 생겨났다. 농업성과 도 농촌경리위원회 산하엔 각각 감자생산국과 감자생산처가 신설됐다. 김 위원장은 99년 8월, 2002년 10월에도 대홍단을 찾았다. 월드비전 관계자는 "평양에서 프로펠러 비행기로 1시간30분 걸리는 삼지연 공항에서 다시 차량으로 1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대홍단을 김 위원장이 세 번이나 찾은 것은 감자농사에 승부를 걸고 있는 증거가 아니겠냐"고 말한다. 월드비전과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협력 사업인 씨감자 생산사업이 순항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 내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북한이 감자 증산으로 식량 문제에서 홀로서기를 하려면 과제가 적잖다. 단기간에 감자 재배지를 늘린 만큼 우량 씨감자 양산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방제 기술 확립과 지력을 높이기 위한 대규모 비료 확보도 불가피하다. 농업 전문가들이 남북 당국 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고수석 기자

김춘언 북한 감자연구소장
"병충해에 강한 품종 개발이 과제"

"두벌농사(이모작)가 가능하도록 생육 기간이 짧고 병충해에도 강한 품종을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7월 21일 양강도 대홍단에서 만난 김춘언(59.사진) 북한 농업과학원 감자연구소장은 "종자 혁명이 큰 과제"라고 말했다. 1998년 부임한 김 소장은 감자만 30년 넘게 연구해온 전문가. 이날 월드비전 관계자들과 씨감자 작황 문제를 논의하던 김 소장은 기자에게 잠시 짬을 내주었다.

- 대홍단의 씨감자 생산사업은 순조로운가.

"내년부터 노지에서 증식한 씨감자를 (식용을 위한) 생산포로 보급한다. 전국 각지에서 씨감자가 아닌 식용으로 생산한 것들을 씨감자로 가져가고 있다. 올해 봄에 비가 많이 왔지만 전반적인 작황은 괜찮다. 주요 품종은 '라야'와 '포태 7' 등이다."

- 씨감자 생산체제 구축을 위한 과제는.

"수경재배 씨감자 생산 사업장의 규모를 넓혔으면 한다. 파종.수확 작업을 위한 기계화는 돼 있지만 파종기에 넓은 지역에 씨감자를 신속하게 옮길 수 있는 소형 운반 차량이 필요하다. 올해 생산한 씨감자를 다음해 파종할 수 있도록 잘 저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 감자 증산에는 비료가 필수적인데.

"이곳에선 화학 비료를 적게 쓴다. 대신 돼지농장 등에서 생산한 거름을 많이 쓴다. 유기농법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 생산된 감자는 어떻게 쓰이나.

"대홍단에 있는 감자 가공공장에서 전분.술.엿.사탕 등을 생산해 각 지역에 공급한다."

대홍단=오영환 기자

국수·술·엿·꽈배기 … "감자로 다 만듭네다"
북한 200가지 요리 개발

북한에선 감자를 주식으로 삼기 위한 요리 개발이 한창이다. "감자는 흰쌀과 같다" "감자로 식생활을 개선하자"는 상부 방침에 따른 것이다.

이전까지는 삶거나 구워 먹는 게 대부분이었다.

감자를 갈아 전을 부치거나 기름에 튀겨 먹기도 했지만 끼니론 부족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감자를 이용한 국수.떡.빵 등이 나와 인기다. 양강도 특산 음식점인 평양의 압록각은 감자 꽈배기와 감자 토장국을 개발해 지난해 5월 '각도 특산물 요리경연'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북한은 감자 가공에도 큰 힘을 쏟고 있다. 대홍단 감자 가공공장은 최근 감자 분탕(잡채).엿.술을 개발했다. 신계 감자 가공공장은 뜨거운 물을 부어 곧바로 먹을 수 있는 즉석 감자국수를 생산하고 있다. 북한은 해마다 감자음식 전시회를 열고 있으며 현재까지 200여 가지의 요리를 개발했다.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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