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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발 짚고 오지여행 … 느린 만큼 많이 보여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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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상문씨가 네팔 카트만두 박다풀(Bhaktapur) 왕궁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이상문]

버스를 탈 때 배낭과 목발을 버스 안으로 던져 놓은 뒤 기어올랐다. 그때마다 승객들은 손뼉을 치면서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힘든 여행의 피로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목발을 짚고 세 발로 세계 여행을 하는 이상문(53)씨가 인도와 네팔에서 버스를 탈 때 경험이다. 버스 높이는 선진국일수록 낮고 후진국일수록 높다는 것을 60여 개국을 돌면서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한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목발을 짚고 다니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어릴 때는 부모와 누나들 등에 업혀 다니다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목발을 짚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많이 여행한 곳은 인도· 네팔· 티벳· 이란·아프리카 등 문명과 거리가 먼 낙후된 나라들이다. 자연스레 ‘오지 전문여행가’라는 이름이 따라붙었다.

 1998년 해발 5000m인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지역을 트레킹할 때다. 오르막은 쉬웠지만 내리막은 어려웠다. 목발이 돌에 미끄러져 몸이 나동그라지기를 수십 번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40여㎞를 가는 데 보통 사람의 세 배인 한 달이 걸렸다. 목발로 여행하느라 겨드랑이와 양손은 굳은살이 박인 지 오래다.

 이씨가 목발로 세계 여행을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 친구의 대출보증을 섰다가 빚더미에 앉게 되면서부터다. 대학 졸업 뒤 공무원이었던 그의 월급 절반은 압류당했다. 낙담한 그는 사표를 던지고 인도행 비행기에 올랐다. 준비물이라고는 부러지지 않는 알루미늄 목발뿐이었다. 캘커타의 빈민촌에서 20여 일을 보냈다. 거적으로 둘러친 흙바닥에서 일가족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삶에 애착이 생겨났다.

 “인도의 빈민보다는 내가 행복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귀국해 일을 다시 시작했다. 동업자와 여행사를 차렸으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여파로 문을 닫아야 했다. 그 후 지방신문 기자와 방송국 DJ 등의 일을 하면서 여행을 계속했다. 그의 여행 원칙은 잠은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배낭여행이다. 사진도 직접 찍는다.

 “여행하는 나라의 사람냄새를 맡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죠.”

 배낭여행을 고집하느라 평소에도 매일 저녁 집 주변 학교 운동장을 세 발로 2시간씩 걸으며 체력을 단련한다. 여행경험이 쌓이자 책을 내기 시작했다.

 최근 배낭여행지로 뜨고 있는 라오스를 여행한 산문집 『라오스로 소풍갈래』(사람들, 326쪽, 1만7000원)를 펴냈다. 이 책에서 라오스의 유명한 탁발행렬을 소개하면서 ‘배고프지 않을 정도만 먹고 남은 것은 나눠준다’는 남방불교의 수행덕목 때문에 가난해도 거지가 없는 나라라고 설명한다. 라오스를 10여 차례 여행한 덕분에 문화적 배경까지 담을 수 있었다. 2011년 인도여행기 『인도에 관한 열일곱 가지 루머』를 펴내기도 했다.

 “여행하고 돌아올 때마다 한계를 이겨낸 쾌감이 밀려 옵니다.” 그가 불편한 몸으로 오지 여행을 고집하는 이유다.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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