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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6) 제79화 제79화 육사졸업생들(39) 장창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1기생의 교육은 앞서 말한대로 미식교련, 분·소대의 초보적인 전술과 99, 38식 일본 소총 기계훈련이 고작이었다.
오늘날같이 일반대학을 능가하는 광범한 일반학 교육은 물론 생각도 할수 없었고 곧 보급될 M1, 카빈등 미식소총의 훈련조차 하지 못했다.
제식훈련에서 문제는 우리말 구령이었다. 구한국의 우리군대에서 우리말 구령이 있었겠지만 전해지는 것은 없었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군에서도 우리의 전통은 단절됐었다.
군영시절에는 영어교육이 목적이었던만큼 구령조차 영어를 썼었다. 그러나 경비대의 창설과 함께 우리말구령과 군사용어의 제정이 시급해졌다.
나는 군영에서 소위로 임관, 1연대에 배속된뒤 잠시 소대장을 맡았다가 곧 교육관으로 임명됐다. 그때의 내 임무는 미육군의 「야전교범」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그에따라 연대 기간장교를 교육하는 일이었다.
하루치를 번역해서 그 다음날 가르치는 식으로 진행했으므로 매일밤1시간씩 미고문관으로부터 교본대로 제식훈련의 실제교육을 받고 그것을 다음날 아침 내가 사병들의 눈을 피해 장교들을 상대로 교육하면 그 장교들이 다시 그날 오후 사병들에게 가르치는 방식으로 진행했었다. 초창기 희화적인 모습의 하나였으나 「우리 것」을 만들어가는 어쩔 수 없는 과정이기도 했다.
『앞으로 가』 『뒤로 돌아가』 등은 그대로 우리말 번역이 쉬웠는데 「열(열)」이 문제가 됐다.
우리말로 『오른쪽 돌아가』 『왼쪽 돌아가』『오른쪽 봐』 『왼쪽 봐』로 했었는데, 막상 사용해보니 너무 길뿐 아니라 대부대의 경우 왼쪽과 오른쪽이 잘 분간이 안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관학교에 온뒤 이를 한자로 바꿔 『좌향좌』 『우향우』 『좌로 돌아가』 『우로 돌아가』로 바꾸었다.
『차렷』은 구령이 너무 짧아 예령과 동령의 시차가 없는 단점때문에 이론이 있었으나 앞에 부대단위를 붙여 『중대-차렷!』 하는 식으로 사용토록했다.
우리말 군사용어의 결정에는 이응준·이형근장군등 선배들 외에 한글학자들의 의견도 많이 참고했다. 한글학회에 가 한갑수씨등 학자들의 조언을 많이 들었다.
소총의 경우 각 부품의 명칭도 그때 내가 번역해 정한 것들이 지금도 쓰이고있다. 가늠자·노리쇠·방아쇠·개머리판 등이 모두 당시 한글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만든 우리말 용어다.
그러나 초창기 이같은 새로운 제식은 완전히 보급되지 못해 무의식중에 몸에 익은 일군 구령이 튀어나오는등 우스개가 많았다.
분열훈련중 『받들어 총!』 해야할 상황에서 한 생도는 갑자기 받들어 총인지. 칼인지 혼동을 일으켜 시차를 두느라 『받들어-』만 불러놓고 잠깐 떼자 잠잠해진 사이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새로운 제식과 군사용어는 1기생들이 각 연대에 임관하면서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1기생들의 교육이 극히 초보적인 것이기는 했으나 제식교육이 어느 정도 끝난 다음엔 군수·군위생·군법등 초급간부로서의 소양교육도 1∼2시간씩 실시했다.
군수교육은 국방부 보급과장으로 있던 유재흥장군이, 군위생은 초대 군의감을 지냈던 신학진장군이 출강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교장 이형근장군은 주1회이상 정신훈화를 통해 『명예와 신의와 책임을 생명보다 존중하라』 『늠름하고 고상한 기품을 견지하라』 『솔선수범하라』 는등 「군인정신」을 주입하기에 힘을 쏟았다.
『죽음은 홍모(홍모)와 같고 책임은 태산과 같다. 장교는 책임에 죽고 책임에 살아야한다』는등 훈화는 1기생도들에게 많은 감화를 주었다. 「군인정신」의 주입은 초창기 사관교육에서 지상목표로 작용했던 것같다.
나는 수시로 비상소집을 걸었다. 엄격한 일석점호·내무사열등 심한교욱에 못견뎌 중도탈락하는 후보생들도 있었다.
비상소집에 맨늦게 나오거나 일석점호·내무사열에서 지적을 당한 후보생은 에누리없이 기합을 주었다. 집총해 연병장을 돌거나 연병장옆 92m고지를 구보로 몇번씩 오르게하는 기합이었다.
1기생중 훗날 준장까지 진급한 이창정후보생(80년 작고)이 몸이 둔해 늘 기합을 도맡다시피했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나는 22세여서 대부분의 생도들이 나보다 위였으나 가르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모두들 군사경험이 있었기 때문인것으로 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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