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와 배냇저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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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며칠전 궂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치러졌다. 매스컴들은 다투어 그 현장들을 보도했고 애끊는 모정들은 담장 여기저기에 엿이며 떡을 붙여놓고 비를 맞으며 문밖에서 서성거렸다.
몇년전만 해도 나도 그중에 한몫 끼어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지 않았던가. 하루가 아니라 1년내내 속앓이 병이라도 있는양 가슴속에 답답하고 걱정스런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보니 30여년전 내가 입시를 치롤 때 생각이 난다.
입시를 치르던 날 아침 어머님은 내가 갓 태어났을 때 입었다는 배냇저고리를 보물인양 간수해 두었다가 내 속옷에 넣고 꿰매 입혀 보내셨다. 나는 무슨 도움이 될까싶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입시는 무사히 치렀고 지성이라 감천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덕을 톡톡히 보았다.
나는 입학후 그것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고 어머님의 정성이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동안 그때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앞으로 이 아이들을 어떠한 인물로 키우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 배냇저고리가 생각났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그 저고리를 깊숙이 간직했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늘잊지앉고 생각했었다.
세월은 유수같다더니, 시간을 잊고 있는동안 큰아이가 입시를 치르게 되었다. 나는 어머님이 나에게 했듯이 아이 몰래 속옷에 배닛저고리를 넣고 꿰맨 옷을 입혔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염두에 둔 교육이, 아니 공든 탑이 무너질 리가 없었다. 큰 아이는 무난히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고 다음해 연년생인 둘째에게 그것을 또 사용했었다. 둘째도 역시 합격했다. 나는 이제 얼마동안은 입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그때 일이 떠올라집안을 서성거린다. 배냇저고리의 부적 아닌 부적은 태어날 때부터 들인 부모의 정성의 상징이 아닐까. <서울성북구정능3동900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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