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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고문보고서 공개 파문, 고문받던 용의자 견디다 못해…'끔찍'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CIA 고문보고서 공개’ [사진 영화 관타나모로 가는 길 스틸컷 캡처]

테러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자행해 온 고문의 실태가 담긴 미국 정보기관 CIA 고문보고서가 공개됐다.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는 2001년 9.11테러 이후 CIA(중앙정보국)가 아시아, 유럽 등지의 기밀 시설에서 알카에다 포로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고문 실태를 상세히 기록한 CIA 고문보고서를 9일 공개했다.

이날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이 공개한 500여쪽의 보고서 요약본에 따르면 “이른바 (고문을 동원한) 선진 심문 프로그램은 잔혹했지만 효과적인 정보를 얻어내지도 못했다”며 “CIA는 그런데도 백악관·의회·국무부·법무부 등에 정보를 가리거나 이들 기관의 통제를 피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CIA의 (테러 용의자) 구금 시설과 심문 프로그램은 미국의 입지에 해를 끼쳤다”고 적시했다. 파인스타인 의원은 “미국 역사의 오점”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CIA의 고문 수준은 당초 의회에 보고했던 것보다 훨씬 잔혹하고 충격적인 것으로 드러나 테러 단체들에게 보복 명분을 주며 대테러전에서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미 정부는 해외 외교 공관과 시설에 보안과 경비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보고서 속 대표적 가혹행위 사례로는 180시간 동안 서 있게 해 잠을 재우지 않거나 죽기 일보 직전까지 물고문을 하는가 하면, 노골적인 성고문도 일삼기도 했다. 용의자를 공포에 몰아넣기 위해 ‘러시안룰렛’(총알을 한 발만 넣고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는 것)과 이와 함께 눈을 가리고 총구를 머리에 댄 뒤 몸 가까이에서 전동 드릴을 작동시키는 행위, 빗자루 손잡이를 성고문 도구로 쓰겠다고 협박한 행위 등이 있다.

관 크기에 상자에 266시간을 갇힌 구금자도 있었다. 보고서에는 “소리를 지르고 애원했다”고 적혀있었다. 방법을 바꿔가며 17일 연속 고문하기도 했고 한 구금자는 바닥에 발이 묶인 상태에서 저체온증으로 숨진 사례도 있다.

물고문의 경우 구금자가 얼굴로 떨어지는 물을 피하지 못하도록 얼굴과 턱을 압박한 것은 물론 물이 흘러내리지 못하도록 턱 주변을 막음으로써 구금자의 입과 코가 실제로 물에 잠기는 상태로 만들어 고문을 행했다. 구금자가 단식에 나서자 항문을 통해 직장으로 물과 음식을 강제로 주입하는 고문도 있었다.

“어머니의 목을 따겠다”거나 어머니에 대한 성적 위협도 가해졌다. 고문을 받은 일부 용의자들에게선 환각·망상·불면증은 물론 자해 시도나 신체 절단을 시도하는 심리적 이상 상태도 나타났다.

‘감각 이탈’이라는 신종 고문 수법도 등장했다. 수감자의 머리카락, 수염 등을 모두 깎은 채 나체로 흰 조명이 비춰지는 흰 방에 가둔 채 시끄러운 소음이나 음악을 계속 트는 방법이다.

알려진 것보다 더 잔인한 고문 실태에 파문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잔혹 행위가 대부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자행된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 정치권의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즉각 보고서 공개를 환영하고 고문 금지를 약속했다. 그는 이날 성명을 내고 “CIA의 가혹한 심문 기법은 미국과 미국민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며 “내가 취임하자마자 고문을 금지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베트남전에서 전쟁 포로로 고문을 당했던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이 고문보고서 공개를 지지했다. 그는 이날 상원에서의 연설에서 “고문으로 미국이 더 안전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버렸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부시 전 대통령은 “우리가 CIA에서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직원을 갖고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라며 CIA를 옹호하고 나섰다.

존 브레넌 CIA 국장은 과거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고압적 심문 기법으로 테러 음모를 저지하고 테러 용의자를 체포하고 미국인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CIA 국장이었던 조지 테닛 전 국장 역시 이날 한 인터뷰에서 “이 심문으로 알카에다 지도자들을 붙잡았고 이들을 전장에서 몰아내 대량살상 공격을 막아냈고 수많은 미국인의 생명을 구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벤 에머슨 유엔 대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은 성명을 통해 “이제는 행동해야 할 때”이라면서 “오늘 보고서에서 드러난 범죄 모의 책임자들은 재판에 회부돼 그 범죄의 위중함에 상응하는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티즌들은 CIA 고문보고서 공개에 “CIA 고문보고서 공개, 잔인하지만 흉악범에게 인권은 사치다” “CIA 고문보고서 공개, 테러리스트들은 당해도 싸다” “CIA 고문보고서 공개, 용의자에게도 인권은 필요하지 않나” 등의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 중앙일보
‘CIA 고문보고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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