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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 꾸지람도 사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크리스머스 카드가 벌써 선을 보이는가하면 해외로 보낼 우편물은 최소한 이달 초순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성급한 마음에 올핸 카드를 얼마나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헤아려 본다.
올여름 미국으로 나가신 시아버님을 생각하고는 날씨걱정에 하루라도 빨리 내세울것 없기는 하지만 나의 정성으로 모시지 못하는 송구스러음이 겹쳐 주위가 온통 휑해지는 느낌이다.
며느리사랑은 시아버지라는 옛말이 하나도 어그러지지 않는다는 걸 막내 며느리로 시집와서 시아버님을 모시는 동안 절감했고 아직도 가슴이 섬뜩한 아버님의 최초의 꾸지람은 각인처럼 생생히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어린 나이에 제법 소견이 텄구나』 하시며 온통 서투르기만하고 정말 반찬 한가지 입에 맞게 못해 올리는 나를 고무해 주시던 시아버님께 무의식적인 결례를 범하던 날, 그러니까 손님한분과 상의를 하고, 계시는데 우연히 그걸 듣고있다가 『아버님 이렇게 하시는게 옳지 않으셔요』하고 나섰던 내게 손님이 돌아가신후 너무나 엄한 꾸지람을 하시는 거였다.
『네 말이 옳다고 생각하면 옳을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 세상엔 그런 것보다 질서라는 걸 우선해야 할때가 있는 법이다.』 다소 높은 어조로 말씀하시던 모습이 새삼 나의 덜 깬 행동을 부끄럽게 한다. 때론 내 마음의 좁음이 애정의 고갈이 얼마나 단세포적인 부덕의 소치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자기가 사랑하는 남편, 그리고 그 남편을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 함께 성장한 형제들… 모두가 사랑을 바탕으로 받아들여져야 함이 당연한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왜 그리도 가족간의 갈등, 시가와의 불화 등이 끊이질 않는 것일까. 사랑이 조건없이 주어질 때 그 사람은 또다른 사랑을 낳고 그러한 사랑을 살리기 위해 주어진 자유도 희생할 수 있고 양보도 순종도 따라야 하는것인데….
사랑을 하는 사람은 바로 사랑을 받는 사람이며 특히 사랑을 베푸는 마음이 있는 여성은 언제나 아름답다고 하는 가장 평범한 삶의 질서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본다.
시아버님께 보낼 카드에는 며느리의 순종하는 마음이 추운날씨에 다소라도 따사함을 느끼실 수있는 사연을 가득 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서울 도봉구 미아5동 439의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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