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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 사람 거치며 비밀회동으로 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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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윤회씨에 관한 시중의 풍문(風聞)이 두세 사람의 입을 거치며 과장된 뒤 ‘십상시(十常侍) 비밀회동’으로 거창하게 포장됐다.”

 지난 1월 6일 작성된 ‘정윤회 동향 문건’의 출처를 수사한 검찰 관계자는 9일 이렇게 말했다. 검찰이 문건의 제보자인 박동열(61)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작성자인 박관천(48) 경정에게, 다시 박 경정이 조응천(52) 공직기강비서관에게 ‘말’을 옮기는 과정에서 왜곡과 과장이 더해졌다는 의미다. 문건 작성 직전 박 전 청장이 “정보 출처가 현직인 김춘식(43)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이라고 제보하고 박 경정이 “제보자는 십상시 모임 참석자”라고 보고한 게 왜곡의 핵심이었다. 검찰 관계자는 "그렇게 해야 자신들의 제보 및 보고의 신빙성이 높아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다”며 "이로써 문건은 신빙성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검찰이 8일 제보자로 박 전 청장을 지목할 수 있었던 건 조 전 비서관의 진술 덕분이었다고 한다. 조 전 비서관은 “‘박 전 청장이 십상시 회동의 참석자인 동시에 스폰서라서 문건의 출처가 확실하다’고 박 경정이 보고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박 전 청장이 당일 검찰에서 “모임에 참석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참석자로 지목된 김춘식 행정관에게 들은 얘기도 아니다. 여기저기서 들은 풍문을 박 경정에게 전달한 것이다”고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박 전 청장이 평소 “정윤회씨는 올해 5월 이혼한 전 부인 최순실(58·최서원으로 개명)씨와 친해 잘 안다” “안봉근(48) 제2부속비서관이 경북 경산 후배라 서로 형님·동생 하는 사이”라고 십상시 핵심 인물과의 친분을 과시해 온 것도 대부분 과장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관계자는 “최순실씨와 가깝다는 주장은 박 전 청장과 알고 지내는 여성이 최씨 소유 빌딩의 입주자여서 안면이 있던 정도”라며 “박 전 청장이 힘을 과시하려고 청와대 인사 및 실세와의 친분을 과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청장과 박 경정, 김 행정관 등 3자 대질조사에서도 세 사람의 진술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튀었다. 박 경정은 “문건 제보자는 박 전 청장이며 비밀회동설은 박 전 청장이 김 행정관에게 들은 얘기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최초 발설자로 지목된 김 행정관은 “지난해 11월 동국대 동문 지인이 선배님이라며 소개해 박 전 청장을 만났지만 문건 내용과 관련해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십상시 송년모임 자체가 없었는데 그 자리의 발언을 어떻게 소개하겠느냐”고도 했다. 이에 박 전 청장도 “김 행정관에게 들은 게 아니다”고 자신의 거짓말을 시인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박 전 청장은 “제보의 객관적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고도 말했다.

정효식·윤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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