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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문기자 칼럼

'고건 1위'와 나비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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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고건 전 총리,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지난해 9월 이래 한 번도 선두를 놓친 적이 없다. 당분간 1위가 무난할 것으로 기대되면서 차기 대선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과연 고건 전 총리는 대통령에 출마할 것인가. 만약 출마한다면 당선될 수 있을까.

'고건 1위'의 시작과 끝을 나비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초기의 미세한 조건 변화가 결과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뜻의 나비효과는 1972년 '예측 가능성: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까'라는 미국 기상학자 로렌츠의 발표에서 유래했다.

선거 분야에서 이미 사례가 있다. 39대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남부 조지아 출신이었지만 후보 경선 1년 전부터 북부에 있는 아이오와와 뉴햄프셔를 공략했다. 초기에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것이 경선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작은 승리에서 출발한 무명의 카터는 민주당 후보로 뽑힌 데 이어 현직 대통령 포드까지 이겼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민주당 광주 경선 직전인 2002년 3월에 발표된 여론조사가 나비효과의 진앙지였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의 가상 대결에서 경선 주자 중 유일하게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난 여론조사가 나비의 날갯짓 역할을 했다.

고건 1위 역사의 출발점은 2004년 9월에 실시된 여론조사였다. 차기 대선을 3년 이상 남겨둔 시점이었다. 나비효과의 초기 조건을 제공했지만, 사실은 잘못된 여론조사였다.

조사 대상 정치인 31명을 모두 알고 있는 응답자는 호감도.능력평가를 포함해 93개 질문에 답해야 했다. 최소 5회의 전화 면접이 필요한 조사를 한 번에 해치웠다. 가나다 순으로 배치하다 보니 강금실 전 장관, 고건 전 총리 등이 다른 정치인에 비해 신뢰성 있게 평가됐고 그 결과 상위를 차지했다. 탄핵 여파로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높았던 시기였고, 조사 몇 달 전에 물러난 비정치인 고건은 과대평가됐을 가능성이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곤란한 일기예보 때문에 나온 것이 나비효과다. 기적에 가까운 조건이 수반돼야 엄청난 사건이 설명될 수 있다. 노 대통령의 경우 후보 결정 과정에서의 우여곡절과 정몽준 후보와의 막판 단일화, 이회창 후보 대비 서민적 분위기, 열성 지지층과 네티즌 활용 등 유리한 조건이 극적으로 전개됐다. 카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직 대통령 닉슨에게 깊은 상처를 받은 유권자가 존재했고, TV 토론에선 포드가 실언을 했으며, 부통령이었던 포드의 닉슨 특별사면에 대해 언론이 반감을 가지는 등 호의적 우연이 이어졌다.

'돌이킬 수 없는 여론' 고건 1위가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초기의 날갯짓이 그에게 '남은 단 한 자리'로 완결되기 위해선 정당 선택, 후보 검증 과정 등에서 기적에 가까운 도움이 이어져야 한다. 미 대선을 연구한 아리마 데쓰오 교수는 "선풍을 일으키는 것만으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계속 따라주는 기적이 필요하지만 여간해선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카터 이후 선풍을 일으킨 후보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대통령이 된 후보는 없다"고 했다.

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