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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 서비스 불만 "사무장 내려라" … 조현아의 '땅콩 회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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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륙을 앞둔 여객기에서 승무원을 내리게 한 조현아(40·사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해 정부가 고발을 검토 중이다. 조 부사장은 지난 5일(현지시간) 0시50분쯤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인천행 KE086 여객기에 탑승했다. 그는 항공기가 움직이기 시작한 뒤 승무원의 서비스 품질을 문제 삼아 승무사무장을 내리게 하면서 출발·도착시간을 지연시켰다.

 국토교통부는 항공보안관·안전감독관을 통해 당시 항공편에 탑승했던 승객과 승무원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8일 밝혔다. 조 부사장의 행위가 항로 변경이나 운항 저해로 이어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국토부는 조 부사장을 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 의뢰한다는 방침이다.

 조 부사장의 지시로 탑승구를 떠났던 여객기는 ‘토잉카(비행기를 밀어 주는 차량)’에 의해 원래 있던 탑승구로 돌아가면서 이륙과 도착이 10분가량 지연돼 승객 250여 명이 불편을 겪었다. 대한항공 등에 따르면 당시 일등석에 탑승했던 조 부사장은 땅콩 등 견과류를 건네고 있는 승무원에게 “매뉴얼대로 서비스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승객 의향을 묻고 접시에 담아 견과류를 내와야 하는데 봉지째 갖다 준 것을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조 부사장은 이후 기내 서비스를 책임진 사무장을 불러 서비스 매뉴얼을 확인했지만 사무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자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지시했다. 대한항공 측은 “사무장이 내린 것은 기장에게 상황을 보고한 후 기장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이후 부사무장이 직무를 대신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해당 항공기는 공항 관제탑에 램프 리턴(활주로로 향하다 다시 탑승구로 가는 것)을 요청해 허가를 받았다. ‘램프 리턴’은 통상 기체에 이상이 발견됐거나 승객 안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실시하게 된다. 기내 서비스 문제로 리턴한 일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당시 교신기록에 따르면 지상근무요원인 대한항공 운항관리사는 “자세한 것 좀 알려 주세요. (생략) 한 명을 다른 승무원으로 바꿔야 된다는 이야긴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기내에선 “사무장 내리고, 부사무장이 사무장 역할 하고요. 추가로 교대시키는 건 아니고요”라는 내용으로 교신했다. 몇 분 후 운항관리사가 “사무장이 내리게 되면 사무장 없이 가도 된답니다”고 말하자 대한항공은 이륙 절차를 다시 진행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조 부사장이 임원의 지위를 이용해 비행기 방향을 틀었다면 이는 사실상 ‘협박에 의한 기기 조작’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행 항공보안법에 따르면 부당한 압력으로 운항 중인 항공기 경로를 변경한 사람은 1~1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AFP·로이터 등 외신들은 이번 일을 ‘땅콩 회항 사건(Nuts Incident)’이라 칭하며 비중 있게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은 “견과류를 접시에 담지 않은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조 부사장이 해당 승무원에게 고함을 질렀다”며 비꼬았다.

 조 부사장의 월권행위라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대한항공은 8일 밤 입장자료를 내고 “비상상황이 아니었음에도 항공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승무원을 하기시킨 점은 지나친 행동이었으며, 이로 인해 승객 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려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항공기는 탑승구에서 10m도 이동하지 않은 상태로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고, 사무장은 매뉴얼을 사용하지 못하고 변명과 거짓으로 둘러댔다”며 “조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을 책임지고 있는 임원으로서 문제 제기 및 지적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상재·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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