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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피플] 바이오 벤처 신화 이룬 여성 억만장자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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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엘리자베스 홈스를 빼놓고서는 젊은 벤처 기업인의 세계를 말할 수 없다. 지금 미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청년벤처 창업 열기를 말할 수도 없다. 벤처 신화로 상징되는 미국식 창조경제를 말하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다.

엘리자베스 홈스는 혈액검사 키트 개발 업체인 테라노스(Theranos)의 창업자로 회장 겸 CEO를 맡고 있다. 홈스는 1984년생, 올해 불과 30세의 젊은 여성이다. 하지만 그는 이 나이에 창업을 한 게 아니라 아예 성공을 거뒀다. 그는 현재 45억 달러의 재산을 일군 성공 벤처 신화의 주인공이다. 포브스의 미국 400대 부자 중 당당히 1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역대 최연소 자수성가 억만장자다. 아울러 BT(생명과학기술) 분야에서 탄생한 드문 억만장자다.

역대 최연소 자수성가 억만장자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스탠퍼드대 화학과에 다니던 그는 2학년 때인 2003년 대학을 그만뒀다. 공부에 흥미를 잃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화학과 생물학의 결합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를 하루빨리 현실에 적용하고 싶은 생각에 학교를 그만둔 것이다.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은 그가 싱가포르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였다. 1984년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의 구호 담당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냈다. 당시 배운 중국어는 앞으로 그가 비즈니스를 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21세기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중국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히 유리한 요소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어 실력은 스탠퍼드 화학과 실험실에서 배운 지식· 경험과 함께 홈스를 창업으로 이끈 계기의 하나이기도 하다. 스탠퍼드에서 한창 화학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시절 그는 싱가포르 유전자 연구소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높은 학업 성취도와 함께 뛰어난 중국어 실력 덕분이었다.

당시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중국을 휩쓸던 때였다. 사스에 걸렸는지를 확인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진단검사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했다. 수많은 의심 환자의 피를 다량으로 뽑아 이를 검사실에서 배양하고 처리하면서 상당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사스를 급하게 진단해야 환자를 격리할 것인지, 정상 생활을 하도록 내보낼 수 있을지를 결정할 수가 있었는데 진단에 시간이 너무 걸렸다. 이를 경험한 홈스는 생화학 지식을 결합하면 빠르고 효과적인 검사 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디어가 번개처럼 뇌를 스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학업을 중단하고 획기적인 혈액검사 기술을 개발해 이를 비즈니스화할 벤처를 창업했다.

그는 스탠퍼드를 멀리 떠나지 않았다. 바로 모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미국 최대의 벤처 창업촌인 팰로 앨토에 둥지를 틀었다. 스탠퍼드대를 중심으로 한 하이테크 연구개발단지인 펠로앨토는 원래 IT 분야의 창업기지로 이름 높은 곳이다. 벤처 창업과 성공의 꿈을 꾸며 혁신적이며 유능한 창의적 인재가 모이는 인재의 용광로이기도 하다. 원래 IT기술을 비즈니스화하던 이곳은 벤처를 위한 인프라와 문화에 힘입어 지금은 BT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 벤처가 창업되고 있다.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문을 연 벤처기업을 돕기 위해 벤처 투자가가 모이고, 이를 상장할 증권사가 달려왔으며 사업구상을 다듬어 줄 컨설팅사에 이를 보도할 미디어까지 몰렸다. 이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공유한 정보를 바탕으로 거대한 산업을 만들어냈다. 애플·구글·페이스북은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 팰로 앨토에서 이렇게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펠로 앨토는 벤처 신화의 성공을 인큐베이팅한 창의도시의 대표주자다. 홈스가 이곳에서 바이오 벤처를 시작한 이유다.

홈스는 다음 학기 등록금으로 마련해 뒀던 돈을 창업자금으로 활용했다. ‘미세한 시작’을 한 것이지만 11년이 지난 지금 그는 창대한 성공을 이뤘다. 그가 팰로 앨토에서 문을 연 바이오 벤처의 이름인 테라노스(Theranos)는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을 합성한 융복합적인 이름이다. 처음에는 한번 붙이기만 하면 두고두고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약물이 서서히 방출돼 몸으로 흡수되는 패치제 개발에 나섰다. 붙이는 패치는 먹는 약, 주사약에 이어 인간이 불편 없이 약물을 몸에 흡수할 수 있게 하는 미래 첨단 의약품 제재로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이를 위해 패치와 전자 칩을 결합하는 등 다양한 융복합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패치 속 약물은 피부나 조직을 지나 혈액까지 들어가야 전신으로 공급되는데 이 기술개발은 오랜 연구와 동물실험, 그리고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이 필요한 까다로운 기술이었다. 정확하게 필요한 약물이 인체에 흡수돼 이용하게 하도록 만드는 기술의 개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따라 홈스는 패치 개발을 중단하고 혈액검사 키트 개발에 힘을 모았다. 소비자가 더욱 많고 보다 간단한 과정과 절차를 거쳐 상품화할 수 있는 혈액검사라는 아이템에 집중한 것이다. 찌를 때 통증도 나지 않을 정도의 아주 미세한 침으로 극미량의 혈액을 채취해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질병을 미리 진단하는 혁신적인 혈액검사 키트의 개발, 그것이 홈스의 1차 목표였다.

사실 이 기술의 개발은 철저한 시장조사를 바탕으로 소비자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다. 일반적인 상업적 임상검사실에서는 시험관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상당한 양의 혈액을 채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것도 검사 분야에 따라 제각기 채취한다. 그래서 임상검사실에서 채혈을 해본 사람은 눈앞에 있는 여러 개의 시험관에든 상당한 분량의 혈액을 보고 놀라기 일쑤다. 그렇게 많은 피를 뽑은 결과는 불과 한 장의 표로 끝나기 일쑤다. 임상검사실에선 이 정도 분량이 없으면 제대로 결과가 안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채취하는 것이지만 사실 이 많은 혈액을 검사 뒤에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의료 폐기물 처리 박스에 넣어 추가 비용을 들여 별도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사업 아이템 떠올려

특히 피를 보기를 두려워하는 어린이들에겐 의료기관에서의 채혈 과정 자체가 충격이다. 홈스도 어렸을 때 그랬다. 자신의 경험이 소비자의 수요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공계 출신임에도 기술 개발자가 아닌 소비자의 입장에서 사업 아이템을 검토한 것이다. 이것만 봐도 홈스의 비즈니스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이에 따라 홈스는 단 한 방울의 피로 모든 검사를, 그것도 초고속으로 할 수 있는 기술과 시스템을 개발하면 수요가 엄청나리라고 보고 이 분야에 기술 개발을 집중했다. 과학적인 이유보다 소비자의 요구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거기에다 그는 자신의 화학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미 존재하는 지식과 기술을 필요에 따라 융복합하고 조합하면 이를 위한 기술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선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엄청난 과학적·학술적인 배경 지식과 연구가 필요하지 않았다. 보다 적은 양으로 검사와 확인에 필요한 반응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얻어내는 화학·생화학·전자 기술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었다. 말하자면 아이디어와 기술 개발의 싸움이었다.

그 결과 홈스는 불과 한 방울의 피로 200가지가 넘는 항목을 한꺼번에 검사할 수 있는 획기적인 혈액검사 키트를 개발했다. 이 키트의 핵심은 혈액 샘플을 채취한다기보다 주사침으로 찌르기만 하면 검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환자가 아무런 느낌이 없을 정도로 가느다란 침으로 한 번 찌르기만 하면 70회 이상의 혈액검사를 할 수 있는 고감도 혈액검사 시스템이다. 이 혈액검사 시스템은 보건의료진의 도움이 없이 이용자가 스스로 검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 지향적이다. 게다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볼 수 있다. 복잡한 과정과 절차를 줄이고 시간도 최소화한 덕분에 비용도 기존의 10%에 불과할 정도로 저렴하다. 한마디로 임상검사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키트인 것이다. 이 검사 키트를 도입하면 미국 건강보험이 앞으로 10년 간 2000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홈스의 혈액검사 키트는 미국이 안고 있는 과도한 의료비 비중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기술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모범사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벤처기업에 필요한 또 하나의 과제는 사업에 필요한 충분한 투자를 적기에 받아내는 것이다. 홈스는 창업 초기부터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에인절투자가, 벤처자본가들로부터 지금까지 4억 달러의 자금을 받아냈다. 그의 탁월한 과학적인 지식과 명쾌한 비전 제시, 그리고 투자가와 고객에 친화적인 태도가 이를 이끌어낸 원동력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지분을 50%나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투자 협상을 잘 한 것이다.

벤처기업의 최고 핵심은 회사의 가치를 키우는 일이다. 홈스는 이 분야에서도 대성공했다. 그는 자신이 세운 테라노스의 가치를 현재 90억 달러로 키워놓았다. 그는 이 회사의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어 포브스 등에서 그의 재산을 45억 달러로 평가한 것이다. 아직 상장하지 않은 이 회사가 상장을 마칠 경우 그 몇 배, 몇 십 배가 되는 주식 평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지금 미국 내 110위인 그의 재산 순위는 앞으로 얼마든지 위로 솟구 칠 수 있는 것이다.

홈스는 기본적으로 과학자다. 18개의 미국 특허와 66개의 외국 특허를 개인 자격으로 보유하고 있는 특허왕이다. 다른 과학자들과 공동개발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특허도 100건에 가깝다. 이렇게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계속 특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이디어와 과학기술이 바이오 벤처의 기본임을 누구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테라노스는 입기만 하면 혈액 속 성분을 분석할 수 있는 웨어러블 혈액 모니터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탐지 시스템 등 사업성이 상당히 높은 특허를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혈액검사에 이은 그 다음 사업 아이템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특허 보유한 ‘특허왕’

그는 인적 네트워크 구성에도 능했다. 테라노스 이사회를 화려한 인물로 구성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지 슐츠와 헨리 키신저라는 초거물을 영입한 것이다. 올해 94세인 슐츠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 행정부에서 1972~74년 재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1982~89년엔 국무부 장관도 지낸 정계 거물이다. 올해 91세인 키신저는 닉슨과 제럴드 포드 대통령 행정부에서 1969~75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1973~77년 국무장관을 지낸 미국 외교의 살아있는 역사다. 한마디로 별들로 이뤄진 이사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테라노스 이사회를 보고 미국 미디어는 ‘별들의 이사회’라는 별명을 붙였다. 당연히 홈스 자신도 별의 일원이 됐다. 이런 조치는 회사의 성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난해 홈스는 날개를 달았다. 8100개의 점포망을 가진 미국 최대의 약국 체인인 월그린이 자사 체인망에 홈스의 혈액검사 키트로 검사를 할 수 있는 테라노스 웰니스 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애리조나주에 우선 시범사업체를 설치하고 조만간 미국 전역으로 확산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이다. 올해 초 낭보가 더해졌다. 미국의 모든 주에서 혈액검사 키트를 사용할 수 있는 허가를 얻은 것이다. 홈스의 오랜 꿈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홈스의 기술과 경영 능력으로 볼 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홈스가 앞으로 어떤 바이오 기술로 우리 삶을 얼마만큼 바꿀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이유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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