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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안드로포프의 정치성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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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리·안드로포프」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이젠 상대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소련의 새 지도자 「안드로포프」를 이해하기 위해 서방의 외교담당자들과 정치분석가들은 자료들을 이리저리 짜 맞춰 보기에 바쁘다. 지난 5월 그가 KGB에서 당 서기국으로 옮기면서 「브레즈네프」 후계자 제1후보로 등장한 직후 시작된 이 궁리는 그러나 아직 이렇다할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안드르포프」는 수수깨끼의 인물입니다』(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월리엄·하일랜드」 교수). 그는 지금 소련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덜 알려지고 불가해한 인물이라는 게 대부분 관측통들의 얘기다. 항상 어두운 색의 양복에 빛깔 있는 안경, 정갈스레 빗어 넘긴 숱 적은 머리, 억양도 몸짓도 없는 단초로운 액션, 누군가를 비난할 때나 찬양할 때나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자세- 이 모든 외양에서 캐낼 수 있는 건 속을 쉽게 내보이지 않는 사람이란 결론뿐이다.
어떤 견해에 따르면 그는 숨은 진보주의자이며, 소련에선 앞으로 경치·경제의 개혁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또 다른 견해로는 그의 참모습은 15년간 맡았던 KGB(국가보안위원회) 의장이란 직책에서 찾아야한다. 두 견해 모두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다.
미 브루킹즈 연구소의 「제리·허프」 교수(듀크 대) 등 일부 소련전문가들은 「안드로포프」가 온건하고 진보성향을 갖고있으며, 그가 집권함으로써 소련은 오랜 정권과도기를 겪지 않고 곧 개혁기를 맞으리라고 본다. 이들은 「안드로포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음 두 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안드로포프」를 말할 때마다 전 KGB 책임자란 경력이 들먹여지지만 KGB는 단순한 비밀경찰이 아니다. 국내보안활동 못지 않게 중요한 업무가 해외첩보 및 대외정책수행이다.
1954년부터 57년까지 헝가리 대사를 지냈고 57년 이후 10년 동안은 당 중앙위 사회주의국가담당 책임자로 일하는 등 모두 14년을 외교분야에서 일한 그에게 KGB를 맡긴 것은 보안활동보다는 대외업무에 초점을 맞춘 인사라는 얘기다. 또 그의 시대에 「안드레이·사하로프」 박사 등 숱한 반 체재 인사들이 추방. 정신병원 수용, 강제 노역 등 엄청난 박해를 당했다지만 KGB의 실무를 지휘하는 부의장들은 거의 「브레즈네프」 측근들이었으므로 「안드로포프」가 뜻대로 통솔할 수는 없었으리라고 이들은 본다.
그가 헝가리 대사로 있는 동안 소련군의 침공이 있었다지만 침공결정엔 직접 참여 안 했을지도 모르며, 60년대 이후 헝가리 경제가 자본주의적 방식을 많이 도입해 부흥했는데 이런 개혁은 소련 당 중앙위 사회주의국가담당이며 헝가리 전문가인 「안드로프프」의 묵인 내지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둘째, 그는 「오토·쿠시넨」의 정치적 문하생이다. 핀란드출신 소련정치인인 「오토·쿠시넨」은 39∼40년의 소·핀란드 전쟁 때 「스탈린」이 핀란드의 공산지도자로 세우려던 인물인대 소련정계에선 개혁파로 유명했었다. 이에 앞서 34년엔 코민태른 서기로 반「히틀러」 인민전선의 구성을 주장하며 「스탈린」과 맞섰고 종전 직후엔 서구사회주의자들을 옹호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스탈린」 사후인 57년 당 중앙위 서기 겸 중앙상임위원(정치국원)까지 지내며 보수파 이론가 「미하일·수술로프」의 맞수 노릇을 했다.
이 「쿠시넨」이 핀란드접경 카렐토 핀 공화국에서 일할 때 청년 「안드로포프」는 그 밑에서 오랫동안 콤소몰(공산주의 청년동맹) 및 당 업무를 봤으며 「쿠시넨」이 「흐루시초프」 집권 후 모스크바로 진출할 때 그를 따라 상경했었다.
「쿠시넨」 사후 그가 거느리고 있던 진보파 보좌관들 상당수가 「안드로포프」의 사회주의국가 담당국으로 왔다. 이중 「게오르기·알바토프」(현 미국·캐나다연구소장)는 20년 가까이 「안드로포프」의 정책보좌관 노릇을 해왔으며 앞으로 서기장안보보좌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는 50년대 초부터 데탕트를 주장해온 사람이다.
지난 4윌22일 「레닌의 날」 기념사에서도 「안드로포프」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창조적 성격(이 표현은 「수정」의 필요성을 주장할 때 쓰는 표현이다)을 논하고 이젠 국내문제(경제 등)들을 해결해야할 때라고 주장해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갖고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 「로버트·뉴릭」 부소장 등은 「안드로포프」가 56년 헝가리 침공이나 KGB의 반체제인사탄압, 지난해 폴란드계엄령선포 등 큼직한 사건들에 깊숙이 간여했다고 주장한다.
유럽의 소련전문가 「레오폴드·웅거」도 「안드로포프」는 「브레즈네프」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KGB를 맡아 운영해온 사람이며 후임자인 「비탈리·페도르추크」는 「안드로포프」의 심복이기 때문에 KGB는 앞으로 새 체제의 구축에도 큰 역할을 하리라고 분석한다.
「안드로포프」의 참모습은 이들 중 어느 쪽도 아닌 중간일는지도 모른다. 문제와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냉혹한 현실주의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안드로포프」 정권의 초기정책은 그의 개인적 성향보다는 아직 재정비되지 않은 지도층내부의 역관계와 소련이 처해있는 성황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먼저 「안드로포프」가 신경 써야 할 곳은 지도층 내부다. 「브레즈네프」가 살아 있을 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앉았지만 사실 소련 지도층은 여러 갈래의 인맥이 얽히고 설켜 미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우선 「브레즈네프」가 집권하기전 지역당부를 맡았을 때마다 하나씩 만들었던 3개의 직계파벌, 즉 드네프르파(「키릴렌코」, 「시체르비츠키」 우크라이나 당 제1서기, 「티호노프」 수상), 믈다비아파(「체르넨코」), 카자흐파(「딘무하메드·쿠나예프」카자흐 당 제1서기)가 있다.
다음으로 70년대의 군사력 증강과 합께 크게 성장해 「브레즈네프」의 주요지지세력이 된 군부가 있다. 「빅토르·쿨리코프」 원수(바르샤바 조약군 총사령관), 「세르게이·고르시코프」 원수(국방차관·해군 총사령관)를 비롯해 원수나 대장계급의 국방차관들이 이 세력을 이끌고있다.
이밖에도 지난 80년 사망한 「코시긴」 전 수상의 잔여세력이 정치국(「미하일·솔로멘체프」 정치국 후보위원 겸 러시아공화국 수상)과 서기국(「이반·카피토노프」 당 조직국장) 및 행정부 곳곳에 남아있고 「브레즈네프」를 도와 당과 행정일선을 책임졌던 실무자들(「그로미코」 외상·「우스티노프」국방상·「그리신」 모스크바 당 제1서기·「로마노프」 레닌그라드 당 제1서기)도 각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안드로포프」는 이 마지막 범주에 속했으므로 이른바 지도층의 「주류」는 아닌 샘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권력을 다지는 과정에서 이들 숱한 세력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정책결정에서 「합의」를 구해야되고, 자연히 움직일 수 있는 폭은 좁아지게 마련이다. 특히 군부의 입김을 고려할 때 소련의 군비증강정책은 적어도 당분간은 변화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극심한 난국을 맞고있는 경제분야에선 반대로 점진적 정책변경과 개혁 등 「새로운 실험」을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정춘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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