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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진실과 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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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설이야, 소설이야? 신문에서 은유적 문구 하나가 시야에 잡힌다. “진실은 아직 안개 속에 있다.”(중앙일보 12월 6일자) 마침 TV에선 ‘불후의 명곡’ 예고편이 나오는데 이번 주 테마는 작곡가 이봉조 선생이다. 기막힌 타이밍. 그의 대표곡이 바로 정훈희의 ‘안개’와 현미의 ‘밤안개’ 아닌가. ‘안개’의 가사는 지금 새겨도 예술이다.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 다오.” 과연 바람은 안개를 걷어낼 수 있을까.

 정국이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1리(里)가 약 400m니 2㎞ 전방이 뿌옇다는 얘기다. 하지만 살다 보면 5리 정도는 약과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인생길은 몇 굽이냐.”(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유정천리’ 중에서) 7년 전 내 앞에 펼쳐졌던 인생의 굽이(고비?)가 재방송처럼 펼쳐진다.

 학교를 떠나 신생 방송사(OBS) 대표로 가긴 갔는데 새벽안개가 자욱했다. ‘곧 해가 보이겠지’. 그러나 시계(視界)는 좀체 트이지 않았다. 존재감을 나타내려면 ‘센 것’(킬러 콘텐트)이 필요했다. 궁하면 통한다 했나. 안개 속에서 찾은 진실. “그래, 진실이다.” 참고로 여기서 ‘진실’은 당시 최고의 배우였던 최진실이다. 고심 끝에 찾아낸 창의적(?) 융합의 산물은 다름 아닌 ‘진실과 구라’였다. 제목부터 강렬하지 않은가. 정상의 여배우와 아웃사이더 개그맨의 결합. 두 MC가 붙어 앉아 있는 그림만으로도 명도 대비가 확실할 것 같았다.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 단계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구라는 ‘쉽게’ 잡았는데 과연 진실은? 친분이 있어도 출연은 별개 문제다. 20년 우정도 섭외의 문고리로 연결되진 않는다. 감동의 3요소를 가동할 때가 왔다. 진실하게, 간절하게, 꾸준하게. ‘의리’의 최진실이 개국 축하쇼에 모습을 드러낸 날 계약이 성사됐고 마침내 ‘진실과 구라’는 방송사 건물 외경을 도배했다.(그녀가 비운의 삶을 마감했을 때 나는 ‘제망매가’로 애도를 표했다. “온 놈이 온 말을 나불거려도 세상에 진실은 하나뿐인데 (중략) 네가 앉은 그 자리엔 벽이 없더니 네가 누운 그 자리엔 벽이 있구나.”)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진실과 구라가 혼재한다. 연예계와 정치계가 좀 두드러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이면서 구라인 건 없다. 어느 하나는 진실이고 어느 하나는 구라다. 진실의 힘이 센가, 현실의 힘이 센가. 어쩌면 진실과 구라를 합한 게 현실 아닐까. 오늘의 자문자답이다.

주철환 아주대 교수·문화콘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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