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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애처럼 불안·초조한 바로 그 장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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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호 34면

‘슈퍼스타K 코리아’ ‘K팝스타’의 새 시즌이 시작되면 마음은 마치 소개팅에라도 나가는 사람처럼 두근거린다. 그렇다. 애정의 방향이 일방적인 짝사랑이라는 것만 다를 뿐, 우리는 짧은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다. 발라드 취향이면 발라드풍으로, R&B를 좋아한다면 R&B 가수로, 기타를 멘 포크가수를 동경해 왔다면 그쪽으로 제각각 마음의 점을 찍고 몇 달간 애정을 쏟을 채비를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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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이라면 이성을 만나는 듯한 느낌으로, 중년이라면 모성애와 부성애로 사랑의 형태는 다르지만, 첫눈에 반하고 불꽃 같은 설렘이 피어나고 자꾸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기다려지는 건 똑같다. 더구나 이 연애의 큰 장점은 동시에 여러 명과 다중연애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제각각의 사연과 멜로디로 전해지는 경연 속에서 ‘재능’이란 말이 영어로 Gift, 즉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란 뜻임을 이보다 더 공감하는 때는 없다. 못생겼든 잘생겼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한가지씩은 가진 사람의 재능이란 놀랍고도 아름답다. 그걸 발견해내고 함께 키워가는 즐거움이란 일찍이 맹자가 군자의 세 가지 큰 기쁨 중의 하나로 정했을 만큼 크며, 박진영이 종종 입을 헤벌리고 바보 같은 웃음을 짓는 표정만큼이나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든다. 팬(Fan)이란 말도 광신도(Fanatic)의 줄임말 아닌가.

하지만 연애의 스토리에 갈등과 장벽이 없다면 말이 안 된다. 눈에서 이미 하트가 뿅뿅 튀어나온 팬들은 나의 스타가 결국 치열한 경쟁을 뚫고 1위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 그리고 대쪽같은 심사위원들과 싸워야 한다. 반대하는 부모가 있을 때 사랑이 더 애틋해지듯, 시어머니 같은 심사위원들의 잔소리에는 귀를 닫고 다른 팬들의 사랑과도 치열한 문자투표로 굳건히 버틴다.

노래가 아름다운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의 노래는 익숙함과 낯선 새로움을 한꺼번에 던져주기 때문에 특별하다. ‘슈스케 6’의 곽진언과 김필, 임도혁의 ‘당신만이’가 그토록 화제가 됐던 건 80년대 세대에게는 그 시절의 추억을, 그러면서도 내 뒤를 이을 세대가 그 토양에서 새롭게 재해석해나갈 미래를 짐작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의 모성애와 자녀의 이성애가 자연스럽게 소통을 이루는 흔치않은 아름다운 화합의 장이다.

그러나 연애는 늘 불안과 초조를 동반한다. 다중 연애를 즐기던 팬들은 어느 순간 누군가와는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오게 마련이고, 다행히 내 스타가 자꾸 살아남는다 해도 마음이 변해 버릴까 노심초사한다. ‘곽진언이 변해버리면 어떡하지. 기타 하나 메고 순수한 마음으로 홍대 앞 카페에서 노래불렀던 그 마음이, 1등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어느 날 일렉기타 메고 댄스라도 하면 어떡하지…’.

다행이 우리의 스타는 변하지 않았고 마침내 “사랑을 나눠줄 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면~그대에게 제일 먼저 자랑할 거에요”라는 눈물 핑 돌게 만드는 간절한 한 마디로 우리를 울려주고야 만다. 그리고 우승. 그렇게 나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은 수많은 난관을 뚫고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모든 게 끝난 뒤 이제 그를 사랑하던 팬들도, 그를 질투하던 사람들도, 심지어 연애의 장벽 같았던 잔소리꾼 심사위원들도 한목소리로 동의하는 게 있다. ‘초심’이라는 게 있었던 시절 말이다.

누구에게나 저렇게 시작할 때의 마음이 있었다. 지금은 대스타가 된 심사위원들에게도 오디션의 가수가 늘 들었을 법한 “그런 노래로 먹고 살 수 있겠나”는 의심에 시달리던 시절, 마음을 다해 내 노래를 한 구절만 들어달라고 외치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그걸 보는 우리도 노래가 아닐지언정 그렇게 절절하게 무언가를 원하고 뜨겁게 부딪히던 때가 있었다.

그런 울림이 가슴에 묵직한 메아리를 만들면서 이 짧은 연애를 마무리한다. 아쉽다. 하지만 또 K팝스타가 시작되고 또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우리는 또 다른 사람과 연애에 빠질 것이다.

이윤정 칼럼니스트.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으며 중앙SUNDAY와 창간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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