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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6억 넘는 아세안, 한국엔 소중한 교역·외교 파트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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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호 14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아세안은 지정학적으로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관문이다. 전통적으로 군사·안보 측면에서 전략적 요충지다.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원유의 90%가량도 아세안 지역인 믈라카 해협을 거쳐 들어온다. 최근 아세안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매력적인 신흥시장 중 하나로 떠올랐다. 경제성장률이 연 5%대에 달하는 아세안은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세계 각국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아세안은 내년 말을 목표로 ‘아세안 공동체’도 추진하고 있다. 역내 협력 강화를 통해 지역 발전은 물론 국제무대에서의 목소리를 더욱 키우려 한다. 이런 아세안 10개 회원국 정상들이 11~12일 부산에 모인다. 우리나라가 마련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내에서 열리는 첫 다자간 정상회담이다. 2009년 제주에서 첫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열린 이후 5년 만으로, 박근혜 정부는 이번 회의를 통해 아세안과의 협력을 더욱 공고히 다질 계획이다.

11~12일 부산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GDP 5%대 성장 … 신흥시장으로 급부상
한국과 아세안이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89년이다. 당시 양측은 ‘대화 관계’를 수립했고 이후 급속도로 발전했다. 2009년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으며 2010년 양측 관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더욱 친밀해졌다.

현재 한국과 아세안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경제와 외교 협력 강화다. 우선 아세안은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에게 큰 의미를 갖는다. 지난해 아세안과의 교역 규모는 1353억 달러(약 150조원)였다. 중국에 이어 둘째이며 우리 전체 무역액의 13%에 해당한다. 89년 83억 달러에 불과했던 무역 규모는 지난 24년 동안 무려 16배나 증가했다. 우리 정부는 2015년까지 1500억 달러, 2020년에는 2000억 달러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세안으로부터 얻는 무역 흑자는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올해에도 300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입장에선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아세안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무역역조가 양측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홍구 부산외대 태국어과 교수는 “지나친 무역수지 흑자가 지속될 경우 한·아세안 관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며 “중·일처럼 대규모 차관을 제공하기 어려운 우리 입장에서는 아세안 국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인 교육 불평등 해소 등을 위해 적극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장기적 관점에서의 대아세안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중 하나는 우리의 경제발전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미얀마에서 추진하고 있는 미얀마개발연구원(MDI)은 좋은 사례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베트남에서 베트남과학기술연구원(VKIST) 설립을 지원하고 있다. 새마을운동도 아세안의 저개발 국가들에는 매력적이다. 아세안 국가들이 새마을운동과 유사한 정책을 추진하는 데 우리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아세안의 비중은 빠른 경제성장률만큼이나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해외투자 규모에서도 아세안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셋째로, 지난해 38억 달러에 달했다. 특히 아세안 건설시장은 우리 건설업체들에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건설 수주액 규모는 지난해 143억 달러로 중동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아세안의 입장에서도 한국은 다섯째로 큰 교역 상대국이다. 5년 만에 다시 특별정상회의가 열리는 것도 이런 양측의 급속한 관계 발전을 반영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 2003년에 이어 10년 만인 지난해 특별정상회의를 열었다. 최종문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기획단장은 “한국이 아세안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부터 깨야 한다. 더 이상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 한류에 열광하는 사람들로만 인식해서는 안 된다”며 “5년 전 아세안의 전체 경제 규모는 한국과 엇비슷했지만 지금은 두 배 이상 커졌다. 향후 몇 년이 지나면 중국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 측면에서도 아세안은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다. 북한도 아세안 10개국 모두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얀마·베트남·라오스 등은 지난달 유엔에서 채택된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 반대표를 던질 만큼 북한과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북핵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협의체 중 하나인 아세안의 지지가 필요하다. 특히 아세안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아세안+3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역내 협의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국제무대에서 우리에게 아세안은 절실하다.

실익 챙기는 ‘아세안 중심성’ 외교 본받아야
아세안의 외교전략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가 중견국가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외교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그동안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아세안의 경우 ‘아세안 중심성(Centrality)’이라는 독특한 전략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전략은 아세안의 주도권을 유지하면서 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 최대의 이익을 얻어내겠다는 것이다. 아세안이 계속 대화 상대국들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것도 이 전략에 따른 것이다.

‘아세안+3(한·중·일)’을 통해 아세안은 중국과 일본이 서로를 견제하는 역학 구도를 만들었다. 그 결과 중·일 양국이 아세안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아세안은 여전히 그 중심에 있다. 중·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체인 한국도 그 틈을 비집고 아세안에서의 외교적 지분을 넓히려 했지만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라 할 수 없다. 중국의 글로벌 파워가 급격히 팽창하자 아세안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동아시아정상회의에 미국과 러시아를 편입시켰다.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한 묘수였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는 북한까지 포함시켜 포괄적인 안보 협의체로 격상시켰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G2(주요 2개국) 시대를 맞아 아세안의 위상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미·중 양국이 동아시아에서의 패권 장악을 위해 아세안과의 협력 강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등 동북아 3국이 경제적으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미묘한 대립과 견제 구도 속에 놓여 있는 만큼 동아시아에서의 아세안 역할론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아세안이 ‘중국 대 미·일 역학 구도’ 속에서 최대의 수혜자라고 평가한다. 이는 지난달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미얀마 네피도의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아세안과의 탄탄한 협력 관계를 기반으로 안보·무역 등의 문제에 공동 대처하자”고 강조했다.

미·중 패권 경쟁에 아세안 몸값 치솟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미얀마와 필리핀에 각각 260억 엔(약 2400억원), 200억 엔 상당의 차관 제공을 약속했다.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도 만만찮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아세안의 기간산업 발전 지원을 위해 200억 달러(약 21조9000억원)의 차관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강대국들 모두 아세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적극적인 구애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들로부터 최대한의 지원 등을 얻어내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몸값을 더욱 높이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한 아세안의 행보는 발 빠르다. 아세안은 내년 말까지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등 3개 분야별 공동체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수준은 아닐지라도 아세안이 공동체를 형성하게 된다면 더욱 긴밀한 협력을 통해 그 영향력은 훨씬 커질 것이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그동안 미국·일본·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한국은 아직 아세안의 중요성을 제대로 깨닫고 있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경제대국으로 등장하고 있는 중국과 권토중래하고 있는 일본을 견제하고 대응하는 데 아세안 공동체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 등 소프트한 분야에서의 한국과 아세안의 협력 강화도 요구된다. 특히 한류의 영향으로 아세안에서의 한국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동남아에서는 아직도 ‘별에서 온 그대’ 등 한국 TV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힘입어 한국어를 배우는 현지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한국 사회에도 아세안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베트남 쌀국수, 태국의 무에타이 등은 이미 우리에게 친숙하다. 동남아 출신 여성들의 결혼이민으로 인한 다문화가정도 이젠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인적 교류도 활발하다. 지난해 동남아를 방문한 한국인은 460만 명에 달했다. 전체 해외 여행객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배긍찬 국립외교원 교수는 “아세안은 내년 말에 국내총생산(GDP)이 2조 달러 이상인 단일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며 “포스트 브릭스(BRICS)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아세안은 한국의 미래 성장의 동력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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