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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대책 관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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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말 많았던 부동산 종합대책이 앞으로 1주일 뒤면 나온다. 지금까지 흘러나온 얘기로 봐선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발표도 하기 전에 재를 뿌리는 것 같아서 뭣하지만 앞으로 이 정책의 갈 길이 고단하리라는 예상을 금할 수 없기에 하는 말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애당초 틀린 진단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니 처방의 효과가 작거나 부작용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대책이 나온 과정을 돌이켜 보면 그런 사정을 알 수 있다.

이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서울 강남의 아파트값 폭등에서 비롯됐다. 처음엔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값이 오르다가 급기야 기존 중대형 평형 아파트값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즈음 강남을 지목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연이어 나왔다. 정부는 즉각 강남을 겨냥한 부동산 대책을 잇따라 쏟아냈다. 10.29대책이 그 결정판이다. 시장에서는 중대형 아파트의 공급부족 때문에 값이 올랐다고 진단했지만, 정부는 투기세력의 준동 때문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정부가 강남 집값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정부 스스로도 특정 지역에 국한된 국지적인 현상이라고 했고, 실제로 다른 지역에서는 집값의 변동이 없었거나 오히려 떨어졌기 때문이다. 집값 오름세가 확산될 우려도 없었고 국민경제에 미친 파장도 거의 없었다. 정부가 사생결단으로 밀어붙일 사안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강남 때리기'라는 의혹을 빼고는 설명이 마땅치 않다.

올 들어서는 강남 주변지역의 아파트값이 들먹거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풍선 효과'다. 강남을 누르니 옆구리가 삐져나온 것이다. 여기다 판교 신도시가 주변지역의 집값 상승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판교발 집값 폭등' 역시 중대형 물량을 줄이고 분양가를 인위적으로 낮추겠다고 하는 바람에 청약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주변지역의 집값 상승을 부추긴 것이나 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정부는 공급을 늘리고 돈줄을 조이는 근본적인 처방을 외면한 채 규제와 단속 일변도의 대책으로 일관했다. 그 약발이 더 이상 듣지 않자 부랴부랴 마련한 것이 이번 종합대책이다.

이즈음 정부는 전선을 더욱 넓히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를 통해 불로소득을 얻을 수 없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다음부터다.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어느덧 강남 집값의 안정에서 '부동산 투기에 대한 응징과 불로소득 환수'로 바뀌었다. 국세청이 느닷없이 강남 3주택 보유자의 투기 실태를 공개하고, 행정자치부가 통계를 왜곡하면서까지 편중적인 토지보유 현황을 까발린 것도 이 무렵이다. 국민의 가슴에는 부동산 과다 보유자의 부도덕성이 각인되었다. 때마침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에 중과세하는 방안을 잇따라 쏟아냈다. 노 대통령은 "가지고 있으면 보유세로, 팔면 양도세로 부동산에서 생기는 이득을 철저히 환수하겠다"고 밝혔다. 일부에서 조세 저항을 우려했지만 자칫 투기옹호세력으로 몰릴까봐 말도 못 꺼내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부동산 종합대책은 이렇게 나왔다.

정부는 헌법처럼 바꾸기 어려운 제도를 만들겠다고 했다. 부동산 관련 세수를 이용해 이득을 보는 계층을 만들어 이 제도를 수호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책의 정당성이나 합리성이 아니라 계층 간 이해관계의 득실로 국민을 편 갈라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번지수를 잘못 짚은 정책을 정권이 바뀌어도 손댈 수 없도록 만들겠다는 독단과 오만은 무섭기까지 하다. 과거 정권의 냉온탕식 부동산 정책의 폐해를 바로잡는 것은 옳다. 그러나 이 정부가 만든 정책이 만고불변의 만병통치약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나면 바로잡아야 하고, 경제 상황이 바뀌면 정책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공영개발방식의 주택 공급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정부기구가 더 잘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정부 부문의 무분별한 확대가 가져올 폐해는 생각보다 크고 오래간다. 그 잘못은 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