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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흐름 바꾼 저금리·실명제 쇼크|부동산 투기·사채 활개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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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저금리와 실명제 쇼크 때문에 돈이 엉뚱하게 들고 부동산투기와 사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공금리는 10%(연)수준이지만 그 금리로는 돈을 맡기려 하지도 않고 따라서 쓰기도 어렵다. 공식으로 정한 금리 외에 과외금리를 얹어주고 받는 금융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금융의 2중 구조다. 연말을 앞두고 그런 성향이 더 심해지고 있다. 단자·증권 등 제2금융권 쪽에 특히 심하다. 또 실명제에 과잉으로 놀라 저축성예금이 요구불예금으로 바뀌고 그 돈들이 부동산과 사채로 연결되고 있다. 금융이 제대로 안 돌고 왜곡현상을 보이고있는 것이다. 최근의 변형된 돈의 흐름을 점검해 본다.

<사채시장>
이·장 사건이후 한동안 뜸했던 전통적인 수법의 사채거래는 최근 은행 돈줄이 죄어들기 시작하자 다시 고개를 들고 있으나 아직은 그전 수준만 못하다. 서울 명동의 하루평균거래량이 5억∼10억원으로 종전의 4분의 1정도. A급 기업어음의 금리는 월 2% 안팎에서 형성되고 있다. 공영·일신어음에 혼이 난 탓으로 액수가 적더라도 담보가 확실한 것이 인기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거래형태가 가계수표할인이다.
장당 발행한도가 10만원이지만 여러 군데의 집배채널을 통해 억 단위의 사채를 운용한다. 보증카드번호가 적힌 것은 월 3%, 적히지 않은 것은 3.5%를 받는다.
은행직원이 수백 장의 가표수표용지를 유용, 할인하는 등 신종금융사고로 등장할 정도로 번창하고있다.
단자회사창구를 통한 수법은 종전과 마찬가지다. 차주는 자금을 넣은 전주가 지정한 단자회사 창구를 통해 빌어가고 별도로 월 0.5%의 이자를 지급한다. 단자회사 어음할인율이외에 연 6% 가량의 금리가 더 얹혀지는 것이다.
CP(신종기업어음) 역시 거래단위가 큰 경우에는 공시되는 발행금리에다 기업 신용도에 따라 1%이내의 덧 이자를 얹어주는 것이 상례다.

<부동산>
6·28과 7·3이후 종래 사채시장에서 돌아가던 돈들이 가장 두드러지게 흘러간 곳이 부동산 쪽이다. 돈은 잔뜩 풀렸고 은행금리는 대폭 내렸고 사채시장은 없애버린다고 하고 결국 돈들은 부동산 쪽으로 풀려 투기에 불을 붙였다. 수법은 사채업자가 직접 부동산을 샀다 팔았다하며 차익을 챙기기도 하지만 돈을 빌려주고 사채이자만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명동 사채시장이 강남지역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이런 식이다. 복덕방 K씨는 5천만원짜리 아파트를 자기 돈 5백만원으로 계약하고 이 계약서를 담보로 해서 사채업자로부터 5천만원을 빌어내서 잔금을 치르고 다시 되팔아 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자기 신용에 따라 월 2∼3%의 이자만 내면 된다.
K씨는 이런 식으로 최근 두 달 동안 1백여 채의 아파트를 사고 팔면서 곱절장사를 했다.
부동산값이 일단 오르기 시작하자 다음 단계는 사채업자들이 직접 뛰어들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값이 오르는데 앉아서 이자만 따먹고 있을 그들이 아니다. 이들의 단위는 아파트딱지 몇 장이 아니라 주로 요지의 땅들을 사들이는 것이다.
직접 빌딩을 지어 올리기도 하고 값만 낮으면 되팔고 딴 데로 옮겨간다. 이 불황 중에 9월의 건축허가면적이 사상최고인 3백 80만 평방m를 기록한 이면을 따지고 보면 이들의 공노가 상당했던 것이다. 필요에 의해서 건물을 짓겠다는 것이 아니라 값이 오르고있고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그같은 엄청난 기록경신을 낳은 것이다.

<채권시장>
4일 상장회사협의회 회의실에서는 기업대표들이 모여 자금난 타개방안을 의논했다. 공통된 결론은 금리를 올려야한다는 것이었다. 저금리 속에 회사채가 안 팔리느니보다 금리를 올려서라도 돈을 빌어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다.
발행금리 12.5%는 명목일 뿐 실제거래는 그보다 4∼5%를 높여줘야 이루어진다. 결국 변칙거래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발행회사채의 절반이상을 인수해야 하니까 50억원이 필요하려면 1백억원을 발행해야 한다. 50억원은 12.5%에 증권회사에 인수시키고 나머지 50억원 중에서 10억원은 장외에 가지고 나가 17.5%의 수익률로 투매해서 마련한 돈으로 증권회사 손해를 메워줘야 한다. 그러고도 또 남는 40억원의 자기네 회사채를 떠 안고 있어야한다.
통계상으로는 지난 10월말 현재 기업들이 회사채발행을 통해 1조 9천 5백억원을 끌어쓴 것으로 되어있지만 이런 식의 함정을 감안한다면 실제 기업이 요긴하게 쓴 돈은 훨씬 적은 수준일 것이다.
변칙거래는 증권회사들도 마찬가지다. 증권회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인수한 회사채는 무려 2천 7백억원. 실세금리보다 4∼5% 낮게 인수했으니 앉아서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 등장한 것이 소위 「전매」라는 것이다. 증권회사가 보유하고있는 채권을 일정기간 후에 15%정도로 다시 사 주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고객들에게 파는 것이다.
조건은 환매채(년 9.5%)이며 금리는 높게 주는 것이다. 규정 위반이므로 물론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지며 단골손님들 역시 덩치 큰 전주들일 수밖에 없다. 증권거래소의 채권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하루평균 거래량이 2백억원 가량인데 이런 식의 비공식적인 장외거래량이 7O억∼1백억원으로 3분의 1이 넘는 수준에 와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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