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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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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개가 얼마나 사람에게 충실한지는 익히 잘 알려져 왔다. 어제(l일) 경남 함안에서 물에 빠진 어린이를 구한 「바둑이」의 얘기도 듣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저수지에 빠져 허위적 거리다 목숨을 건진 6살의 어린이는 이 셰펴드와 사귄지가 불과 5개월. 지난 9월부터는 개 먹이기가 곤란해 이웃 집에 판 남의 개였다.
그런데도 바둑이는 옛 주인을 잊지 않고 위기에 뛰어들어 목숨을 구해주었다. 실로 개의 해 임술년에 다시 듣는 의견의 미담이었다.
예부터 사람 못된 것은 개보다 못하다고 말한다. 그만큼 주인에게 충실하고 의리를 지키는 개는 배신과 변절을 일삼는 사람보다 낫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걔에 비유하여 자신의 불찰을 경계한다.
의견과 충견의 얘기는 사실, 전설, 문학작품 속에 너무 많이 나온다. 목에 물통용 메고 조난 당한 등산객을 구하는 알프스의 개, 우유배달 수레를 끌며 끝내 소년과 운명을 같이하는 플랜더즈의 개. 모두 감동을 주는 얘기다.
거의 1천년의 내력을 가진 전북 임실 오수견의 얘기는 특히 유명하다. 술에 취해 고갯길에서 잠든 주인을 구하고 숨진 이 개를 기념해서 마을이름도 오수리가 됐고 의견비가 세워졌다. 또 75년부턴 이 미담이 교과서에 실려 인문과 동물의 사랑의 교호작용을 교육하게됐다.
소설가 「헨리·제임즈」도 개를 꽤 좋아했나 보다. 그의 개 「맥스」를 두고 『개의 모든 것』이란 수필도 썼다.
거기에 보면 『사람이 개에 빠지면 빠질수록 개의 잠재적인 모든 미덕이 솟아 나온다』고 말했다. 「월버포스」란 한 신부는 개 비찬논자다. 『개는 분명히 충에 의해서 사람의 동료로, 보호자로, 또 여러 점에서 사람의 표본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선지 개에 대한 끔찍한 사람은 동양보다 서양이 한 수 위다. 프랑스만 해도 9백만 마리의 개가 있다. 세 가구에 한 마리 꼴이 넘는다. 개 기르는 비용이 80년에 38억 프랑, 줄잡아 우리 돈으로 5천억원이 넘는다. 아파트에서도, 택시에서도 개는 「사람 대접」을 받고 죽으면 아담한 공동묘지에 묻혀 주인의 애도를 받는다.
미국이라고 이에 질 수 없다. 무려 전국에 4천 8백만 마리, 두 집에 한 집 꼴로 개를 키운다. 개 먹이, 개 미용실, 개 장난감, 개 옷가게, 개 탁아소(?)가 날로 번창한다. 이쯤 되면 『개 팔자가 상팔자』일수 밖에 없다.
거기다 개를 주제로 한 영화나 TV프로가 대인기다. 「래시」「벤지」「호브」등은 일류스타 뺨치게 유명하다. 보신탕논쟁이 나왔을 때 영 국민이 필리핀 인을 조롱, 매도한 것은 불과 몇 달 전의 얘기. 이해가 갈 만하다. 자, 이래도 개를 천덕꾸러기로만 여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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