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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게임’과 ‘오즈의 마법사’

중앙일보

입력

수전 콜린스 원작의 ‘헝거게임’ 시리즈는 결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어두운 미래를 다룬 수많은 영화가 있었고, ‘파리 대왕’(1990, 해리 훅 감독)이나 ‘배틀 로얄’(2000, 후카사쿠 킨지 감독)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사투를 벌이는 틴에이저들의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이처럼 레퍼런스를 찾다 보면, 한 편의 고전을 만나게 된다. 바로 1939년에 나온 라이먼 프랭크 바움 원작의 ‘오즈의 마법사’(빅터 플레밍 감독)다.

할리우드 고전기 이후에 등장한 모든 미국영화는 ‘오즈의 마법사’에 한두 가지씩은 빚지고 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빅터 플레밍 감독의 ‘오즈의 마법사’는 ‘원형’으로서 많은 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게리 로스 감독의 ‘헝거게임 : 판엠의 불꽃’(2012, 이하 ‘헝거게임’)은 특히 그렇다. 먼저 공간을 보자. 캣니스(제니퍼 로렌스)가 살고 있는 무채색의 ‘12구역’(사진 1)과 온갖 화려한 원색이 넘쳐나는 수도 캐피톨. 각각 도로시(주디 갤런드)가 살고 있는 흑백 화면의 캔자스와 총천연색의 오즈 왕국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도로시가 토네이도에 휘말려 오즈 왕국으로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면, 캣니스는 동생 대신 ‘헝거게임’에 나가고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여주인공을 내세운 두 영화는 ‘고향 → 낯선 곳 → 고향’이라는 여정을 똑같이 반복하는 셈이다.

디테일을 살펴 보면 토네이도에 휩싸인 도로시의 집과 12구역에서 캐피톨로 향하는 시속 320㎞의 고속 열차가 같은 기능(낯선 곳으로 이동)을 한다. 흥미로운 건 도로시의 집을 집어삼킨 회오리바람 속에서도 창틀을 통해 바깥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사진 2). 이것은 빨리 달리는 열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나 마찬가지다. 화려한 세계를 처음 접할 때의 경이감도 두 영화는 공유한다. 오즈 왕국에 떨어진 집의 문을 열고 나간 도로시는 물감으로 그린 듯 화려한 광경을 접한다(사진 3). 이것은 캣니스가 열차에 탔을 때를 연상시킨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음식들과 정갈하지만 세련된 톤의 인테리어 앞에서, 캣니스는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넋이 나간다(사진 4).

더 시선을 끄는 공간은 화려한 낯선 곳보다는 무채색과 흑백의 고향이다. ‘헝거게임’의 12구역은 미래의 미국이라기보다는 차라리 1920~30년대 공황기 미국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1930년대에 만들어진 ‘오즈의 마법사’의 다소 황량한 캔자스(세트에서 촬영되었지만)와 유사성을 지닌다. 길에서 만난 허수아비(레이 볼저), 양철 나뭇꾼(잭 헤일리), 사자(버트 라르)와 함께 에메랄드 성으로 향하는 일행의 모습에선, 열차 안에서 캐피톨을 바라보는 캣니스와 피타(조쉬 허처슨)가 연상되기도 한다. 캐릭터들도 일정 부분 겹치는데, 도로시에게 세 친구가 있었다면 캣니스에겐 멘토인 헤이미치(우디 해럴슨)와 파트너인 피타와 스타일리스트이자 지지자인 시나(레니 크래비츠)가 있다. 에피(엘리자베스 뱅크스)가 캣니스를 캐피톨로 이끌며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한다면, ‘오즈의 마법사’에선 글린다(빌리 버크)가 유사한 역할을 하는데 두 캐릭터 모두 다소 과한 패션을 보여준다(사진 5). ‘헝거게임’의 독재자 스노우(도널드 서덜랜드)는 오즈의 마법사(프랭크 모건)와 같은 존재인데, 스노우가 이미지와 쇼를 통해 대중을 통치한다면 오즈도 허깨비(사진 6)를 만들어 도로시와 친구들을 속이려 한다.

그렇다면 도로시의 루비 구두는 ‘헝거게임’에서 무엇으로 변형되었을까? 헝거게임에 나서기 전 캣니스가 입었던 붉은 드레스가 아닐까 싶다. 도로시의 구두가 뒤축을 세 번 부딪히면 도로시를 집으로 데려다 준다면, 캣니스의 드레스는 입고 빙글빙글 돌 때 불 붙는 듯한 비주얼을 보여준다(사진 7). 이 두 장면은 컬러뿐만 아니라, 두 여주인공에게 마법적 위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꽤 유사성을 띤다. 도로시가 마녀를 물리쳤을 때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 같은 캣니스의 영웅상이나, 오즈 왕국/캐피톨에서 도로시/캣니스가 겪는 외모의 변화 등등 ‘헝거게임’과 ‘오즈의 마법사’는 꼼꼼히 따져볼수록 많은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글= 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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