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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회장의 빛과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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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6월 14일 5년8개월 만에 귀국해 조사를 받고 있다. 조그마한 무역업체에서 시작해 40개 계열사와 396개의 해외 현지법인을 거느린 대기업을 일궈내고 한국 경제 성장의 산증인이었던 그가 지금은 국민의 지탄 속에 나이 들고 초췌한 모습으로 변한 것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조사 후 그의 죄가 밝혀진다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한국에 남겨놓은 족적(足跡)을 반추(反芻)해보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한다. 그는 한국 경제 성장의 주역으로 본인만 능력 있고 노력하면 맨주먹으로만도 재벌이 될 수 있다는 '대우신화'를 만들었다. 또한 그의 저서명처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신념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세계경영의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가 1990년대 세계경영을 부르짖었던 이유는 나날이 강화되는 세계경제의 블록화를 타개하기 위한 현지화 전략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략은 당시에는 생소한 개념이었으나 지금은 이미 상식이 돼버렸다.

그는 일 년의 반 이상을 해외 출장을 다녔다. 휴식이나 휴가도 없었고 취미생활도 없었다.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기도 했다. 하루에 단 몇 시간을 자면서 불도저처럼 살았던 그의 인생은 요즘의 나약한 젊은 세대의 그것과 대비를 이룬다. 그의 경영방식이 70, 80년대 식이었고 또 그의 경영과 업무스타일이 구식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한 비판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70, 80년대에는 그의 방식이 시대조류에 가장 맞았을 수도 있었고 그러기에 눈부신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대우가 벌어들인 재화, 대우가 창출했던 고용 효과, 대우가 문화.예술.사회 분야에 기여한 측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못살았던 시절 대우와 김우중씨가 한국인에게 줬던 희망과 자신감 등은 이제는 거의 잊혔지만 결코 우리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업적이라고 믿는다.

필자는 또 다른 측면에서의 대우의 업적도 언급하고 싶다. 김우중씨와 대우가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교육부문에 투자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거기에 더해 한국 대기업이 그동안 소홀히 했던 학술부문 지원에서 대우는 거의 독보적이었다. 많은 사람은 얼마 전 타계한 금호그룹의 박성용 명예회장의 음악예술 부문 지원과 대우의 학술활동 지원이 비견될 정도라고들 한다. 대우학술재단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학술활동 지원이 오늘날 커다란 열매를 맺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기성세대는 70년대 그의 패기와 성과를 보면서 나라가 성장한다는 뿌듯함과 대리만족을 느꼈었다. 필자는 한 인간이나 체제나 시대를 평가할 때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인간이나 "빛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잘못한 것은 비판하되 잘한 점은 인정하는 태도가 요망된다. 아마도 김우중씨에 대한 수사가 끝나고 나면 그에게 엄정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와 대우의 '그림자'부분에 대한 판단이 끝나고 나면 한번쯤은 차분히 그들이 가졌던 '빛'에 대한 성찰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그 그림자가 긴 만큼 빛도 밝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유영구 명지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