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의 양과 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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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끝을 알 수 없이 치닫기만 하는 한국인의 교육열은 지금 전대미문의 「대학원 홍수시대」를 낳고 있다.
국민들의 교육열이 높은 것은 어느 면에서 바람직한 일로서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잉 교육열이 몰고 온 교육의 의미전도 현상과 교육자체의 혼란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되고 있다.
대학원 난립과 그로 해서 양산되는 저질학위의 문제는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다.
그것은 대학원이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국가운행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지식인력을 양성하는 임무를 말고 있으며 그에 따라 다른 교육기관의 운영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때문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전문직, 관리직, 기술직 등의 수요에 응하여 대학원은 유능한 고급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오늘 전국 98개 대학에 설치된 대학원이 자그마치 1백69개에 이르고 학생수도 6만3천여명에 이르고 있다. 그 숫자만으로는 5만여명에 불과한 일본의 대학원 규모를 능가한다.
그 같은 대학원의 홍수현상은 이 시대 우리 사회의 필요의 산물이란 면에서 보면 우려할 일은 아닐지 모른다.
한 연구에 의하면 80년대 우리나라의 고급전문인력 수요는 이런 추세속에서도 10만명의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7O년대에 노동집약적 산업체제로 1백억달러 수출고지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초·중등교육의 보편화에 의거한 것이었다면 80년대 이후의 지식노동집약적 산업체제의 성공적 운행을 위해선 대학과 대학원 교육의 성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것은 올바른 관찰에 틀림없다. 하지만 고급인력은 대학원의 양적 증가와 학위의 남발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1953년에 몇 몇 대학에서 소규모로 시작된 대학원이 30년이 지난 오늘에 근 50배로 성장했다는 것은 외면상 장한 일이긴 하지만 정적 수준의 향상이 없는 양적 증가는 오히려 뜻밖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대학원 교육의 질이 형편없다는 노골적인 비판의 소리는 둘째치고 대학원 교육을 받을 수 없는 무자격자가 버젓이 학위를 취득한다든가, 대학원을 돈 있는 사람들의 유학장화 하는 사태가 일어남으로써 학문연구의 과정이나 업적자체가 경시되고 모멸되는 사회풍조마저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오늘 지적되고 있는 대학원교육의 문제는 이것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대학의 경영자들이 대학원을 학부의 부수물로 혹은 상징적 가치를 위한 대학의 장식물처럼 인식하며, 혹 대학의 재정적자를 보전하는 방편으로 삼고 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원이 시설과 교수 부족에 허덕인다. 전용시설이 거의 없고 단 1명의 전임교수도 없는 대학원이 무려 1백2개나 되는 것이 현실이다.
도서실이나 실험 실습실은 더더구나 말할 것이 없다. 그런 현실에서 학부보다 더욱 ,세분화된 전문적 연구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하다.
교수의 논문지도가 소홀할 것이고 교육과정의 운행자체가 어려울 것이며 따라서 대리집필, 표절논문이 양산되고 저질 학위가 남발될 것은 물론이겠다.
이런 현실을 문교부가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교육은 늘 올바른 것이어야 할 뿐더러 국가에 이바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국가의 최고 고급인력을 공급하는 대학원은 더더구나 올바른 교육연구기관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나라의 발전이 거기에 달려 있을 뿐 아니라 그 아랫 단계의 교육이 올바른 궤도를 달릴 수 있기 위해서도 마땅히 대학원은 정상화하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교부는 이미 「대학원대학」설립을 구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그러나 지금 대학원의 홍수시대에 당장 필요한 일은 처리해야 옳다.
대학원의 설치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채 신청해 오는 대로 대학원을 인가해 준다면 문교행정이 없는 것이나 한가지다.
대학의 갑작스런 팽창이 대학교육의 심각한 난조를 가져온 것이 현실이지만 대학원 교육의 난조는 그 이상이라는 것을 철저히 인식함으로써 양을 축소해서라도 질을 높이는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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