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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완의 광고로 보는 세상] 세븐 업의 업 다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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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지배를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월급쟁이들이 오늘도 독립을 꿈꾸고 조직폭력배들이 끊임없이 영역 싸움을 하는 걸로 봐서 그런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전국시대의 종횡가(縱橫家) 소진(蘇秦)은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꼬리는 되지 말라(鷄口牛後)"고 말했으며 오래된 시칠리아의 속담에 따르면 "남에게 명령하는 즐거움은 성행위보다 달콤하다"고 한다.

1929년에 세상에 나온 'Bib Label Lithiated Lemon-Lime Soda'라는 음료가 있었다. 콜라가 개발 초기에는 소화불량이나 피로를 치료하는 약으로 팔렸는데, 이 음료도 처음에는 숙취에 효과가 좋은 약 비슷한 것으로 팔렸다. 그러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상표명이 세븐업(7-Up)으로 바뀌게 되는데, 숙취의 일곱 증상에 효과가 탁월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었고 광고도 그 점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세븐업을 술 마신 다음날 마시는 음료로, 또는 칵테일 만들 때 섞는 소다수로 소비해 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세븐업은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시장 자체가 작기는 했으나 레몬-라임 음료 분야의 굳건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68년, 돌연 세븐업은 광고사에 길이 남는 대변신을 꾀하는데, 유명한 '언콜라(uncola)' 캠페인이 그것이다. 광고 책마다 소개되고 있는 이 캠페인을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다. '언콜라'는 '콜라가 아니다'라는 뜻이니 '세븐업은 콜라가 아니다', 즉 콜라와의 명확한 차별화를 꾀하려는 광고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뜻밖에도 많은 것 같다. 엄밀히 말해 '언콜라'는 '콜라가 아니다'라기보다는 '콜라는 콜라지만 기존 콜라와는 다른 콜라다'라는 의미다. 코카콜라 마실까, 아니면 펩시콜라 마실까, 아니면 로열크라운 마실까, 잠깐, 세븐업도 있네…. 소비자의 머리에 코카콜라와 펩시와 로열크라운의 대안으로 자리 잡는 것, 레몬-라임 음료의 영예로운 1위 자리를 포기하고 드넓은 콜라 음료 시장의 말석을 차지하자는 것이 이 캠페인의 핵심이었다. 꼬마 정당의 당수 자리를 포기하고 거대 정당에 합류하는 정치인을 생각하면 쉽다.

결과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첫해에 매출이 15%나 늘었고 세븐업은 미국에서 코카콜라, 펩시에 이어 제3위의 소프트 드링크로 부상했다. 그러자 말보로 담배와 밀러 맥주의 성공으로 자신감에 차 있던 필립모리스가 5억2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세븐업을 인수한다. 그리고 무모하게도 콜라 시장을 떠나 다시 독자 노선을 걷다가('이제 미국은 세븐업을 마십니다' 등의 광고) 급기야 시장점유율을 10%나 빼앗기기에 이른다. 당 서열 3위까지 오른 그 정치인이 다시 뛰쳐나가 꼬마 정당을 만든 꼴이라고나 할까. 작은 1위보다 큰 꼴찌가 좋은 경우도 많으니 정치도 마케팅도 오기로 할 건 아닌가 싶다.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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