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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인적 자본 세계 6위의 함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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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독일의 상업은행인 도이체방크 연구소가 최근(8월 1일) 발행한 '글로벌 성장의 중심들(Global growth centres)'이라는 이슈 보고서는 한국의 인적자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포함한 세계 34개국 가운데 6위라는 평가 결과를 실었다.

▶ 권대봉 고려대 사범대 학장.교육학

보고서는 2020년까지 인적자본의 증가가 고도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국가로 인도.중국.남아프리카.태국.스페인을 예측했고, 한국과 스페인은 교육 투자 성공 국가로 평가되었다. 이런 추세가 15년 지속돼 2020년이 되면 한국이 독일이나 일본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예측은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고무적이다.

국내에서 교육 문제 때문에 정부.학교.시민단체가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때에, 한국이 교육 투자 성공 국가의 모범사례로 보고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보고서를 읽으면서 느낀 점 몇 가지를 나누고자 한다.

먼저 국가의 미래를 만드는 작업과 관련된 것이다. 한국은 지금 과거 문제에 매달려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현재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독일 사람들은 2020년의 미래 만들기를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너무 다르다.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과 중국을 포함하여 34개국의 경제성장과 인적자본의 관계를 비교평가하면서 글로벌 시각에서 독일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현재 독일이 1위를 했고 2020년에 2위를 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현재 독일의 교육제도가 변하지 않으면 수년 내에 한국에 추월당할 수 있다고 정부에 경고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 보고서엔 한국인이 마냥 좋아해서는 안 될 함정이 있다. 과거 산업사회와 달리 오늘날 지식기반사회에서는 평생학습.계속교육이 인적자본의 주요한 구성 요소이다. 그러므로 인적자본의 양적 척도에는 정규교육뿐만 아니라 평생학습.계속교육도 포함되어야 하는데, OECD 국가 중 성인들의 평생학습량이 최하위인 한국의 수준이 이 연구에 반영되지 않았다. 독일의 고교 졸업률은 OECD 평균인 60%에 크게 미달하지만 한국의 고교 졸업률은 95%를 넘는다고 칭찬하였다. 유럽 선진국들은 중학교나 고교를 졸업할 때 졸업자격시험을 치르며 합격하지 못하면 전 과정을 다 마쳐도 졸업장을 받지 못하며 졸업률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 달리 말하면 한국은 고교 질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개인 차원에서 교육기간이 1년 늘어나면 개인 소득 증가는 최저 5%에서 최대 10% 증가하고, 국가 차원에서 인적자본이 10% 증가하면 1인당 국내총생산이 약 9% 증가한다고 연구보고서가 추산하고 있는 것은 고등교육 공급이 과잉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인재 양성 구조는 고교 졸업생 수가 대학 입학정원을 밑돌아서 졸업생이 원하면 모두 고등교육기관에 진학이 가능한 원통형이다. 그러나 기업은 핵심인력과 기능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대학 졸업생은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는 이유는 취업 구조가 피라미드형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고등교육 구조를 분석함에 있어 원통형 인재양성 구조와 피라미드형 취업 구조의 불일치로 인한 구조적 청년실업 문제를 야기하는 고등교육 공급 과잉 현상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이 없이 한국 교육이 매우 모범적이라는 칭찬 일변도다. 한국의 고등교육기관이 1975년에 290교에서 2003년에 1400교로 증가하였고, 학생 수도 24만 명에서 360만 명으로 증가한 것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그렇지만 고등교육 과잉 현상으로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은 연구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연구 결과를 행여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 구조개혁의 뒷다리를 잡는 데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권대봉 고려대 사범대 학장.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