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관·경찰정보관 거쳐 복사본 반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복사돼 유출된 것으로 알려진 문건은 A4용지 수백 장 분량이다. 이러한 청와대 내부 문건을 누가 어떤 방법으로 밖으로 빼낸 것일까.

 청와대 측은 지난달 28일 ‘정윤회 동향’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사장 등을 고소하면서 ‘(문건을 작성한)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문건을 유출했는지를 철저히 수사해 달라고 했다. 이름을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박모 전 행정관(경정)을 유출자로 지목한 것이다.

 하지만 본지가 청와대에 근무했던 복수의 관계자 증언을 종합한 결과에 따르면 이 문건은 ‘청와대 인사 A씨→검찰수사관 B씨→경찰 정보관 C씨’ 순으로 전달돼 일부 언론에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청와대 인사나 검찰수사관을 통해 외부로 흘러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30일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올 1월 중순 박 경정이 아닌 제3의 청와대 내부 인사가 공직기강비서관실에 몰래 들어와 문건을 복사해 외부로 유출했다는 정황이 지난 5월 말~6월 초 민정수석실에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청와대 내부 인사는 공직기강비서관실 근무자들이 모두 자리를 비우는 시간을 미리 알아뒀다가 문건 복사·사본 반출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해당 청와대 인사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문건을 복사해 갔으며, 이를 평소 친분이 있던 검찰수사관 B씨에게 건넨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B씨가 이 문건을 경찰 정보관 C씨에게 전달했는데 일부 언론이 이 과정에서 해당 문건을 입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와 경찰 주변에서는 여전히 박 경정이 해당 문건을 유출한 당사자라는 의혹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일부 언론은 한 경찰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박 경정이 라면 두 박스 분량의 문건을 반출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박 경정이 지난 2월 이 박스를 서울경찰청 정보분실로 옮겨 놓았고, 같은 분실 소속 경찰관 2~3명이 박스에서 문건을 빼내 복사해 유출했다는 것이었다.

 이 보도가 나온 직후 서울경찰청은 정보분실 소속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진상조사를 벌였다. 서울경찰청은 “조사 결과 박 경정이 정보분실에 짐을 옮겨 놓은 것 자체를 모르는 직원이 많았다”며 “경찰조직의 특성상 분실장 내정자로 알려진 간부의 방에 들어가 짐에 손을 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정보분실의 경우 복사를 하면 보안 기록이 남게 돼 있는데 박 경정이 분실에 짐을 옮겨 놓은 기간에 대량으로 복사가 된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박 경정 본인에게 확인해 본 결과 (분실에 있던 짐에는) 그런(청와대에서 가지고 나온) 문건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도 이날 “두 박스 유출은 사실이 아니다”며 “문건을 가지고 나갔다는 얘기가 있어 내부적으로 확인해 본 결과 라면박스 두 개를 갖고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고 말했다.

 다른 한 관계자도 “두 박스라고 말하는 근거는 경찰청으로 가면서 가져간 박스를 얘기하는 것 같은데, 그걸 담아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일부 문서를 파일 형태가 아니라 출력해서 가져갔을 수는 있다”며 박 경정의 유출 가능성을 열어뒀다.

 청와대 주변에선 “박 경정이 컴퓨터 화면에 뜬 문건을 사진으로 찍어 외부에 유출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 보안 시스템에 따라 문건 등을 쉽게 반출하기 어려워 사진 파일 형태로 빼낸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박 경정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진이든, 문서 형태든 청와대에서 문건을 유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강현·허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