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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냉온수매트, 전기장판 울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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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달 25일 동양이지텍 연구실에서 윤정수 대표가 스팀보이 보일러를 소개하고 있다. 윤 대표는 “앞으로도 매출의 5%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수면 가전’ 전문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오종택 기자]

지난달 25일 인천 가좌동 동양이지텍 본사 연구실. 윤정수(48) 대표가 온수매트 회로기판을 깔고 앉아 테스트를 하고 있다. 회로기판은 내년 초 발매 예정인 ‘스팀보이’ 냉온수 겸용 매트의 신제품에 들어갈 핵심 부품이다. 윤 대표의 이런 꼼꼼한 덕분에 스팀보이는 경쟁사 제품보다 훨씬 비싼데도 올해 대박을 쳤다. 현재 이 회사가 파는 냉온 겸용 제품의 가격은 41만8000원.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저가형 온수매트가 10만원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4배 정도 비싸다. 하지만 올 한해에만 스팀보이 냉온 겸용 매트는 40억원 어치가 팔렸다.

 내년 신제품은 온수 매트 시장을 개척한 윤 대표가 내놓은 또 하나의 혁신 상품이다. 겨울에만 쓰고 장롱으로 들어가는 겨울용 제품인 온수 매트를 4계절 제품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다. 이 제품은 겨울에는 온수를 돌리고, 여름에는 냉수를 돌릴 수 있다. 윤 대표는 “얼음을 얼렸다가 녹이는 원리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전력 소비량은 여름철 기준 6w/h, 겨울철 250w/h다. 여름에는 선풍기(50w/h)보다 전력이 덜 쓰인다.

 동양이지텍은 요즘 보일러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으로 꼽히지만 업력은 23년으로 적지 않다. 윤 대표는 26살이던 1992년 동양이지텍을 창업했다.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농협에서 700만원을 대출받아서 건넸고, 이를 자본금 삼아 윤 대표는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전자회로기판(PCB) 등 보일러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연매출은 10억원 안팎에 그쳤다. 2009년까지 정직원은 11명이었다. 회사의 성장은 2009년 만든 온수매트 스팀보이에서 비롯됐다. 온수매트는 윤 대표가 개발에 착수한 2002년에도 이미 있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 등지에서 수입한 모터와 전기장판에 쓰는 부품 등을 활용해 제작된 매트들이 판매됐다. 하지만 유통 채널은 방문판매나 온라인이 대부분이었고, 판매량도 보잘 것 없었다. 당시 업계에선 전기장판을 대체할 제품의 필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기 장판이 워낙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온수 매트는 보완용 제품 정도로 인식됐다.

 하지만 윤 대표의 고집과 끈기도 만만치 않았다. 스팀보이는 온수매트와 작은 보일러로 구성된 제품이지만, 개발에는 꼬박 7년이 걸렸다. 온수매트 보일러 개발에 착수한 윤 대표는 5년 뒤인 2007년 작은 박스 형태의 보일러를 내놨다. 매트 개발은 2년이 더 걸렸다. 1000번 이상 구부려도 고장 나지 않고, 모터 소리도 거의 없는 고급 온수매트다. 당시 가격은 31만8000원으로 경쟁제품보다 비쌌다. 하지만 제품을 사용해 본 주부 테스터들의 평가가 좋았다.

 하지만 여전히 판로가 문제였다. 기존 방식의 방문 판매로는 싸구려 제품 이미지를 벗기 어려웠고, 시장 확대도 힘들었다. 윤 대표는 홈쇼핑 채널을 떠올렸다. 그 길로 홈쇼핑 채널 구매담당자(MD)를 만나 설득했다. 하지만 벽은 높았다. 홈쇼핑 담당자들은 “물이 새지 않느냐” “모터 소리가 크지 않느냐” “애프터서비스는 잘 되느냐” 등 품질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두 번씩, 2년간 30여 회의 제품 설명회를 한 끝에 윤 대표는 마침내 홈쇼핑에 스팀보이를 선보일 기회를 잡았다. 모터가 시끄럽다고 하면 직접 시연했고, 내구성을 의심하면 외부 기관의 성능테스트를 받아 성적표를 제출했다.

 2011년 10월 18일 오전 7시 20분. 스팀보이는 CJ오쇼핑을 통해 첫 방송을 탔다. 윤 대표는 이 순간을 “제2의 생일과도 같은 날”이라고 표현한다. 하루만에 온수매트 1017개를 팔았다. 3억원어치다. 윤 대표는 그날 방송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간단한 ‘소주 회식’ 후 정신없이 다음 방송과 쏟아지는 주문 물량을 채워야 했다. 철옹성 같았던 하이마트·이마트 등 대형 유통사도 앞다퉈 스팀보이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기술은 소비자 요구에 따라 쉼없이 진화했다. 온수매트를 조립할 때 너트를 돌려 끼우던 걸 플러그를 꽂는 방식으로 바꾼 사람이 윤 대표다. 호스와 매트를 연결할 때 주부들이 너트를 잘 조이지 못해 물이 샌다는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터치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미국 업체와 금형을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온수매트 커버를 세탁이 가능하도록 분리형으로 만들어낸 것도, 온수매트의 호스를 환경 호르몬이 발생하지 않는 친환경소재로 만들었다.

 기술이 쌓이고 판로가 다져지면서 고성장이 이어졌다. 2008년 연 매출 20억원에 그치던 동양이지텍은 매년 1.5배 이상의 성장을 거듭했다. 11명이던 직원 수는 2012년 46명, 현재는 114명으로 불어났다. 생산 시즌인 7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는 파견사원까지 270명이 달라붙어도 일손이 모자랄 지경이다.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온수매트가 전기장판에 비해 확실한 비교 우위를 갖는 분야는 전자파다. 그런데 온수매트도 보일러 본체에서 전자파가 나온다는 지적이 지난해 나왔다. “할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죠. 하지만 변명해봐야 어떡해요. 이 악물고 지난해 겨울 신제품을 만들었죠.” 윤 대표가 올해 초 선보인 스팀보이는 본체를 끌어안고 있어도 2mG(밀리가우스) 이하의 전자파만 나온다. 한국의 인체보호 기준은 833mG, 스웨덴은 2mG, 네덜란드는 4mG 등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동양이지텍의 올해 매출은 지난해(350억)보다 100억 이상 늘어난 450억~5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올 한 해 판매되는 온수매트만 약 30만개가 넘는다.

 동양이지텍은 내년에는 중국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 지난 3년간 수출만 하던 것을 현지 생산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동양이지텍은 지난 4월 중국에서 의료기기를 만들어 판매하는 커시안(可喜安)과 합작해 ‘커시안동양전자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중국 옌지(延吉)에 공장을 세웠고, 조만간 상하이에 있는 동방CJ홈쇼핑을 통해 제품 판매 방송을 할 예정이다.

 윤 대표는 앞으로 ‘수면 가전’에 특화해 제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전략도 세우고 있다. 수면 가전이란 침실에서 잠을 자는데 필요한 모든 가전제품을 통칭하는 말로, 윤 대표가 만든 말이다. 그는 “다른 회사가 베낄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제품을 공개할 수 없지만 내년 초 혁신적인 수면 가전제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인천=이현택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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