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타산책] "밤새 야구생각, 5년째 아침에 자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박경완(SK). 최정상의 포수다. 투수 리드.미트질.블로킹, 그리고 송구 능력까지. 그의 별명은 2루 훔치는 타자 잡는 '포도대장'. 그러나 홈런왕 두 차례, 1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이 말해주듯 방망이도 수준급이다. 그는 250개의 홈런으로 이만수(시카고 화이트삭스 코치)의 포수 최다 홈런 기록(252개) 경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시즌 중이라 야구장 밖에서는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그를 10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만났다.

◆ 5년째 불면증=박경완은 인터뷰 당일 새벽에도 수면제를 먹고서야 잠을 청했다. 5년간 이어진 불면증은 더 이상 불면증이 아니다. 아침에 잠드는 게 일상이 됐다. 모두가 잠든 밤, 그는 케이블TV를 통해 밤새 프로야구 재방송을 본다. 2000년은 박경완에게 가장 화려한 날이었다. 4연타석 홈런(5월 19일 한화전)이라는 한국 프로야구 초유의 기록을 세웠고, 40홈런을 쏘아올리며 이만수 이후 15년 만에 포수 홈런왕에 올랐다. 팀(현대)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는 그해부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도 모르겠어요. 병원에 가서 심리치료를 받을 생각도 있었지만 시즌 중이라 기회를 놓쳤죠. 그러다 보니 적응했고 이젠 이런 생활이 편해요."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그의 말을 듣다 보면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공 하나하나가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오직 나만이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앉아 있어요. 오직 나만이 타자의 뒤에 있는 겁니다. 투수가 던지는 볼, 수비와 주자의 움직임, 머리 위에서 움직이는 방망이…. 그 모든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나의 실수는 나만의 것이 아니죠."

◆ 당구장 주인이 될 뻔했다=박경완은 전주고 시절 김원형(현 SK)과 배터리를 이뤄 전국대회에서 꽤 이름을 알렸다.

1990년, 그는 원광대 진학이 예정돼 있었다. 학교 친구 2명을 더 받아주는 조건이었다. 그때 고려대에서 러브콜이 왔다. 학교에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친구를 배신한다는 생각에 그도 싫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발끈했다. 학교와 아버지는 끝까지 맞섰다. 친구를 버릴 수도, 아버지에 맞서기도 어려웠다. 그는 집을 뛰쳐나갔다. 보름 정도 지난 뒤에 프로야구 쌍방울에서 연락이 왔다. 계약금 1300만원, 연봉 1000만원에 오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때가 7월 13일이었다. 그러나 구단은 이틀이나 약속을 어기며 박경완을 만나 주지 않았다. 15일은 계약 마감일이었다. 그는 졸지에 미아가 됐다. 박경완은 "갈 곳 없는 나를 거저먹으려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친구들을 배신해 벌받은 거라고 자책했다.

12월까지 방황의 시간이었다. "답답하셨는지 부모님이 당구장이라도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겠다고 했죠. 다음날이었어요." 쌍방울에서 뜬금없는 전화가 날아들었다. 연봉 600만원 줄 테니 연습생으로 들어오라고. 죽어도 가기 싫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가 펑펑 우셨다. 어머니는 야구를 하라고 했다. 젊은 놈이 이게 뭐냐고.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으면 안 갔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우시니까…."

?포수 슬러거로 남고 싶다=심부름하고 볼이나 받아 주며 2년을 보냈다. 93년 조범현 배터리 코치(현 SK 감독)를 만났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96kg이던 몸무게가 1년 만에 81kg까지 빠졌다. "하루에 블로킹 연습만 1000개를 했어요. 1000개라니.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무릎부터 찌릿찌릿해요."

타자로서의 능력이 빛을 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94년 7월 12일 롯데전에서 3연타석 홈런을 때려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투수 리드 잘하는 수비형 포수가 아닌 슬러거 포수로 사람들 기억에 남고 싶다. 포수는 아무리 잘해도 조연밖에 될 수 없고 그것에 만족한다는 박경완이다. 그러나 타석에 들어서면 언제나 주연을 꿈꾼다.

인천=강인식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박경완은…

▶출생=1972년 7월 11일, 군산

▶가족=부인 한수연(28)씨와 딸 지예(4)

▶키.몸무게=1m78㎝.86㎏

▶학교=전주 중앙초-전주 동중-전주고

▶주요경력=91년 쌍방울 입단, 96.98.2000.2004년 골든글러브, 97년 현대 이적, 2000.2004년 홈런왕, 역대 첫 4연타석 홈런(2000년 5월 19일 대전 한화전), 2000년 페넌트레이스 MVP, 시드니올림픽 동메달, 2001년 포수 첫 20(24홈런)-20(21도루)클럽 가입, 2002년 12월 SK 이적(3년 19억원, 옵션 포함 4년 23억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