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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북 대표단 국립묘지 참배] 북, 국립현충원 참배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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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 대표단의 국립현충원 참배는 분단 반세기 만에 남북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 될 전망이다. 국립현충원은 분단 상태를 고착화했던 6.25전쟁의 순국선열들이 대거 안장된 곳이다. 수십여 년간의 주적이고, 현재도 휴전의 상대방인 북한의 대표단이 이곳을 찾으면 정치.정서적으로 남북 대치 상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북한 입장에서도 자신들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남조선 괴뢰군'의 묘지에 참배하는 모양이 된다.

이번 참배는 그동안 남북관계 개선에 근본적 장애였던 한국전쟁의 기억을 미래지향적으로 재정립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한국전쟁의 책임 문제를 어떻게 정리하는가라는 '전후 처리' 방향의 착안점이 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서로의 상처를 들춰내 책임을 묻고 처벌을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불행했던 과거를 정리할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자발적으로 남측에 참배 의사를 알렸다. 남측 의향과 참배할 경우 북한 인사에 대한 의전은 어떻게 되는가를 문의해 왔다고 한다. 현충원 참배는 김정일 위원장의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기남 북측 당국 대표단장과 림동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정일 위원장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결정에는 체제 보장과 대미 민족 공조 분위기의 확산이라는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한국전의 상징인 국립현충원을 방문, 정전협정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측과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전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평화체제 구축은 결국 김정일체제에 대한 국제적 보장이다. 또 남한 내부의 반북 강경론을 소외시켜 대북 경제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북.미 간 입장 차가 분명한 북핵 문제에서는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북측의 참배는 남측의 북한 신미리 애국열사릉, 대성리 혁명열사릉 등의 참배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로선 향후 북한을 방문하는 남측 인사들의 참배를 막을 명분이 없어진다. 지난해 남북관계를 경색시켰던 '김일성 주석 조문'을 둘러싼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

보수적 시각에선 북한의 행보가 여전히 '평가 유보'다. 수도권을 겨냥한 장사정포가 휴전선 북쪽에 대거 배치돼 있고, 적화통일을 명시한 북한의 노동당 강령이 존재하는 이상 참배가 대치 상태의 실질적 해소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보수진영에서는 6.25전쟁의 발발은 양측 책임이 아니라 명백히 북측 책임인데 전쟁에 대한 사과 없이 참배라는 형식으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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