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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중 외교, 공자님을 업고 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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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형규
최형규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요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두 권의 책을 정독하고 있다고 한다. 『공자가어통해(孔子家語通解)』와 『논어전해(論語詮解)』다.

모두 양차오밍(楊朝明) 중국공자연구원장이 썼다.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과 사상, 논어에 대한 깊은 통찰로 각각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11월의 일이다. 당시 시 주석은 공자의 고향인 산둥(山東)성 취푸(曲阜)를 방문했는데 양 원장이 이들 책을 선물하자 “반드시 정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시 주석이 당 총서기로 취임한 직후인 2012년 말, 친한 친구 몇 명과 저녁을 했다. 식사 도중 시 주석은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 얘기를 꺼냈다. 그는 “한국의 대통령도 『중국 철학사』를 읽고 공부했다는데 우리는 왜 우리의 전통문화를 공부하지 않는 거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이후 식사는 유가와 노가·묵가를 논하는 토론장으로 변했다.

지난 9월 24일, 시 주석은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자 탄생 2565주년 국제학술세미나에 국가주석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참석해 인(仁)과 애(愛)를 강조했다. 이후 그는 세계를 향해 “중국은 상대를 포용하며 평화적으로 굴기하겠다”고 했고, 미국에는 “태평양은 두 대국을 품을 만큼 넓다”고 했다. 모두가 공자를 앞세워 중화 부흥을 도모하겠다는 시 주석의 통치관과 세계 전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민주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앞세워 ‘팍스 아메리카나’를 이룬 미국에 ‘인의예지덕(仁義禮智德)’으로 집약되는 유교의 인본적 가치로 대응하겠다는 얘기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자연스레 한국 유교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의 유교적 가치가 문혁(1966~76년) 과정에서 철저히 파괴된 반면 한국엔 원형에 가까운 그 가치가 산재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유교 가치의 원형을 찾기 위해서라도 한국을 찾을 게 뻔하다.

지난 3월 경북 안동시 대표단이 우호협력도시인 취푸를 찾았을 때 중국 측이 유교의 인문적 가치에 대한 공동 연구에 동의한 것이 단적인 예다. 이는 우리의 대중 외교에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한·중의 공동 유교 연구와 그 가치 공유는 결국 중국 외교철학에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

요즘 시 주석은 하루가 멀다 하고 외국 정상을 만나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고압적이다. 그런 중국 외교에 유교적 가치를 주입하면 대국의 국제적 책임과 의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까.

중국이 자랑하는 전통문화 태극권에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이라는 권법이 있다. 작은 힘으로 상대의 큰 힘을 제압하는 권법이다. 상대 힘이 쏠리는 방향을 보고 그 힘을 역이용하는 게 핵심이다.

지금 중국의 힘은 공자에게 쏠리고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외교부가 중국에 ‘공자 외교포럼’이라도 먼저 제의해 보면 어떨까.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