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이 있는 책읽기] 생각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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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논리학에 '거짓말쟁이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다. 크레타인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고 말한다면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다는 역설이다. 만일 이 말이 참이면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크레타인이 말한 이 문장은 다시 거짓이 된다.

아주 간단한 경우라도 언어로 자기가 자신을 증명하려고 하면 모순이 일어난다.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더 높은 차원에 서서 생각의 규칙을 따져봐야 한다. 같은 차원에 머물러 있으면 결코 역설은 끝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끝없는 되풀이(무한역행, infinite regress)가 일어날 뿐이다.

해법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체계 바깥으로 성큼 걸어 나오는 것이다. 물음에 답하기 전에 물음 자체를 되짚어보는 것, 이것이 철학적 사고의 출발이다. '책 속의 책'(요르크 뮐러 글, 비룡소)과 '리버밴드 마을의 이상한 하루'(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 문학동네어린이)는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룬 책이다. '책 속의 책'은 무한역행을 재치 있게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은 선물 받은 책의 포장지를 찢고 책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간다. 그 책 안에서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 자기를 보고 있는데 그것이 '조금 잘못'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화가를 만나 그림을 고치는데 성공하지만 화가는 그림을 끝낼 수 없다고 호소한다. 독자는 책에 달린 색안경을 쓰고 주인공과 함께 책 안으로 들어가 무한역행의 해결을 돕는다.

반면 '리버밴드 마을의 이상한 하루'는 독자가 책 안에서 밖으로 걸어 나오도록 이끄는 책이다. 리버밴드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사건들은 책에서 나와야만 제대로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독자는 이 끔찍한 마을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책 속의 체계를 벗어나 상위 차원의 사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들은 우리에게 '생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의 힘을 일러준다. 한 발짝 물러서서 나와 나의 생각을 되돌아보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준다. 이 여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재미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김지은(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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