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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출만 명령, 죽이라곤 안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아리엘·샤론」이스라엘국방상은 의회보고에서 이스라엘군이 기독교민병대의 팔레스타인게릴라 색출작전을 도와주었고 부분적인 작전지원까지 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무고한 주민들이 대량 학살될 줄은 몰랐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긴」내각에서 사임한 두 각료와 야당의원들은 팔랑헤 민병대의 피난민촌 진입을 허용한 이스라엘군이 대학살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며 민병대의 진입허용사실만으로도 이스라엘군이 이번 대학살의 공모자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있다.
학살사건으로 들끓고 있는 이스라엘의회로부터 출석요구를 받아 플래카드를 들고 항의데모를 벌이는 군중들의 빗발같은 비난을 받으면서 의회에 나온 「샤론」의 의회증언요지는 다음과 같다.
팔랑헤 기독교 민병대들은 16일 밤 수용소 안으로 들어갔으며 이때 이스라엘군은 그들의 요청에 따라 조명탄을 터뜨려 일대를 대낮같이 밝게 만들어 주었다. 이스라엘군은 비행기와 박격포로 조명탄을 발사했다.
17일 상오11시(한국시간17일 하오6시)한 장교가 이스라엘군 북부지역사령관「아미르·드로리」소장에게 『팔랑헤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보고했다. 「드로리」장군은 즉각 작전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이스라엘군은 이에따라 사브라와 파카니 수용소로 들어가 그곳에 모여 사는 난민보호에 나섰다.
그러나 샤틸라에서는 이미 살육이 저질러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범이라는 누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 이스라엘군은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이스라엘군은 샤틸라에서 그처럼 참혹한 대학살이 빚어지고 있는 줄은 알지 못했다.
18일 아침 샤틸라는 「아주 깨끗하고 철저하게」소탕돼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이 수용소안에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있는데다 인구도 밀집돼있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자세히 알 수 없었다. 대 살육이 진행되는 동안 이스라엘군은 수용소밖에 머물러 있도록 명령을 받았었다.
팔랑헤 기독교민병대가 수용소로 들어가기 전에 그들은 분명히 이스라엘군 사령관에게 『샤틸라의 남쪽과 서쪽으로 병력을 투입하여 테러리스트만을 색출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이스라엘-팔랑헤당 합동회의에서도 이 작전은 절대로 시민, 특히 노인과 여자·어린이를 해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했었다.
이스라엘군은 서 베이루트전투에서도 종종 팔랑헤 기독교 민병대를 이용했었다. 그러나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이번처럼 잔악 무도한 짓을 저지른 법사는 없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스라엘군은 팔랑헤 기독교민병대를 속속들이 알게되었으나 샤틸라에서 그들은 마치 다론 군대처럼 행동한 것이다.
「베긴」수상은 팔랑헤측의 해명을 요구했으나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그래서 북부지역 사령관과 나 자신(「샤론」국방상)이 팔랑헤 사령관을 찾아가 이 참상이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일어났는가를 알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조차도 인정하려하지 않았다.
팔랑헤 민병대원들의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시간에 이스라엘군은 탱크로 중무장, 난민촌외곽을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샤론」국방상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이스라엘 야당인 노동당 당수「시몬·페레즈」는 『정부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으며 진실은 절반도 들어있지 않다』고 맹렬히 비난했다.
그는 『수상, 국방상, 도대체 어떤 바보가 팔랑헤를 수용소 안으로 들여보냈단 말이오』라고 소리치면서 『신문기자와 TV카메라맨들이 당신들보다 먼저 학살현장을 찾아냈다니 이스라엘군은 모두 눈을 감고 있었던가요. 귀를 갖고서도 총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말입니까. 당신들은 그 참혹한 학살을 어린애장난으로 생각하시나요』라고 몰아세웠다.
그는 지난해 시리아군이 레바논 기독교도들을 살해했을 때 나치의 유대인학살과 같은 만행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베긴」수상의 발언을 돌이키면서 『유대인이나 기독교도들이 아닌 회교도라고 해서 만행을 당해도 괜찮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다』며 수상 등 관계각료의 사임을 강력히 요구했다.
「베긴」에게 사표를 냈던 에너지상 「이츠하크·버먼」은 『수상이 학살진상조사위원회의 설치를 거부했기 때문에 이에 합의하기 위해 사임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날 의회가 시작되면서 공산당계 의원인 「투피크투비」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이스라엘군의 묵인과 비호아래 처참히 살육됐다고 고함을 질러 의회분위기를 처음부터 긴장속으로 몰아넣었다.
한편 서 베이루트의 난민학살이 팔랑헤 민병대와 「하다드」소령이 이끄는 민병대들에 의해 자행됐다는 글씨가 채 무너지지 않은 난민촌 가옥의 문짝과 벽에서 발견되고 있다.
무너지지 않은 가옥의 출입문과 벽에 아랍어로 흘려쓴 글들 가운데는 『「토니」가 여기 살았었다. 오, 하느님이여, 나의 조국이여, 나의 가족이여, 카타에브(팔랑헤당)가 여기에 왔었다』『사드 하다드 민병대』『「바시르·제마일」의 군』등의 글씨가 보였다. 【외신종합=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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