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는문화·신만남의 문화|한국인의 마음을 탐색하는 에세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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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같은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일본사람은 「원」이란 말을 많이 쓰고 한국사람들은「한」이란 말을 즐겨쓴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원」도 「한」도 다같이「우라미」(원망)라고 읽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엄격히 구별된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옥편을 찾아보면 금시 알수 있을 것이다. 「원」은 「원망할 원」자로 되어있다. 원수란 말처럼 그것은 주로 타자에 대한 것, 또는 자기 밖에 있는 무엇인가에 대한 감정이다. 그러나 「한」은 「뉘우칠 한」이라고도 읽듯이 오히려 자기자신에게 합한 마음이며, 자기내부에 쌓여가는 정감이다.
남에게서 피해를 본 것만으로도 「원」의 감정은 생겨난다. 그러나 「한」은 자기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희구하고 성취하려는 욕망없이는 절대로 이뤄질수 없는 정감이다. 그러한 꿈이 없을 때「한」의 감정은 단순한 절망감이 되어버리거나 「복수심」으로 전락되고 만다. 「원」과「한」이 어떻게 다른가.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서 우리는 일본의 『쥬우신구라』(충신장)와 한국의 『춘향전』을 잠시 비교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두 이야기는 제각기 그나라의 민중으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아온 민족적 서사극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일본의 전통극인 가부끼 (가무기)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이 바로 이『쥬우신구라』다. 태평양전쟁 직후 일본에 진주한 미국의 점령군이 『쥬우신구라』의 연극상연을 금지시켰던 예하나만을 보더라도 그것이 얼마만큼 일본대중에게 깊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짐작할수 있다. 한동안 공연금지를 당하고서도 전후부터 오늘날까지(1980년3월말현재)『쥬우신구라』의 가부끼 상연회수는 1백50회로서 전체랭킹 제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가부끼계에는 아무리 불황이라도 『쥬우신구라』의 막을 올리기만하면 손님들이 터진다는 징크스가 있다.
가부끼만이 아니다. 인형극·영화·소설할것 없이 『쥬우신구라』의 이야기는 3백년동안 수천 수만번 되풀이되고 있으나 사람들은 용케도 질리지 않고 그 똑같은 이야기를 즐기고 있다. 요즈음 일본의 최대 베스트셀러의 소설이 되고, 또 TV극으로 방영되어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언덕위의 군상』역시 『쥬우신구라』를 소재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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