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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선구자」 원혼달래줬으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조두남옹, 독립기념관성금 본사기탁
○…『항일독립투사들의 광복의 꿈이 서린 만주북간도 용정고개의 일송정과 해난강의 물소리를 독립기념관에 담고 싶습니다.』
50년전 겨레의 울분을 노래한 『선구자』 의 작곡가 조두남옹(71·마산시서성동 삼익아파트1등l002호)은 광복전선에 앞장섰던 선구자들의 원혼을 달래기위해 독림기념관성금을 20일 중앙일보에 보내왔다.
5년전인 77년3월 중풍증세로 몸져누운뒤 줄곧 병간호를 해온 부인김혜민여사 (7l) 는 『진작 이루어졌어야 할일인데 늦게라도 결실을보게돼 다행스럽다』 고 언어장해로 손짓을 섞어 얘기하는 조옹의 뜻을 전해준다.
조옹은 선구자의 가사를 지은「윤해영」의 자취를 찾아 그의 행적을 담은 기념악보를 .독립기.념관에 전시하는것이 더 할수없는 바람이다. 「윤해영」. 1930년 대북만주 목단강 서장안가싸구려 여관방에서 불우한청년기를보내던 조옹에게 나라잃은 울분의 가사를 던져주고 사라진 선구자의 작사자.
1주일후에 다시 찾아오겠다던 청년은 50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고 있다. 조옹은 독립기념관 성금모금 소식을 매스컴을 통해 전해 들을 때마다 만주 등지에서 광복군의 활약을 작곡했던 악보나 자료를 유랑생활과 6·25사변통에 모두 잃어 기념관 전시사료에 보탬이될수 없음을 못내 아쉬워했다.
평양이 고향인 조옹은 17세때인 1928년 나라잃은 울분에 유랑의 길을 뗘났고 3년뒤 한국인들이 모여 살던 용정에 머물며 독립투사의 활동을 누구보다도 소상하게 보아온 탓으로 독립기념관에 이들의 발자취를 소개하는 특별전시관을 만들어 역사의 교육장으로 활용되기를 바랐다. <이두석기자>
○…『진작 세워졌어야 마땅할 것인데 해방후 한세대나 지난 다음에야 독립기념관을 논의하게되어 때늦은 김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후손들이 선열들의 독립정신과 독립쟁취의 피어린 투쟁을 길이 이어받을 수 있도록 알찬 기념관을 세워야할것입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불을 당긴 장본인인 박준채씨 (67·조선대교수·광주시지산동250)가 20일 독립기념관건립성금을 중앙일보에 보내왔다.
박씨는 1926년11월1일 광주∼나주통학열차에서 누님 박기왕 (당시17세·광주여고진2년)을 희롱하는 일인학생을 때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을 만든 장본인.
「3·1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우리독립운동사의 2대산맥』 이라고 말한 박씨는 『새로 지어지는 독립기념관이 산 역사교육장으로 구실을 해야할것』 이라고 의견을 말했다.
박씨는 광주학생운동의 주동자중 한사람으로 퇴학당해 일본으로 건너가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해방후 광주 조선대학에서 경제학을 강의해왔다. 올해서야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박씨는 기념관이 세워지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관계자료나 사진도 모두 기증하겠다고 했다.
기념관건립 모금운동과함께 박씨는 『몇해전 각종 기념일통폐합때 없어진「학생의 날」 이 하루빨리 부활되어야한다』 고 강조했다. <박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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