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학년 교실 이제 정리하자” “그냥 둬요 졸업할 때까지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의 유품이 그대로 보존된 안산 단원고 2학년 교실을 정리하자는 의견이 1·3학년 학부모회의에서 처음으로 공식 거론됐다. 이에 대해 학교 측과 생존학생·유가족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뉴시스]

“2학년 교실을 이제 정리하고자 한다. 너희 후배들도 들어와야 하고….”

 경기도 안산 단원고 추교영 교장은 26일 오전 9시30분쯤 세월호 사고 생존 2학년 75명 전원을 강당인 단원관으로 불러 모았다. 그러곤 2학년 교실을 정리하겠다는 얘기를 꺼냈다. 순간 흐느낌이 터졌다. “싫어요”라는 소리도 나왔다. 추 교장은 “학교 안에 따로 추모관을 만들어 희생된 친구들 물건을 보존하겠다”고 했다. 이에 한 학생은 “친구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공간”이라며 “제발 졸업할 때까지만이라도 그냥 둬 달라”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 10개 반 교실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추모 공간으로 바뀌었다. 수업 공간으로는 쓰지 않고 희생된 학생들의 유품을 그대로 남겨 놓았다. 지금도 책상 위에는 고이 접힌 교복 재킷과 체육복, 그리고 학생들이 수시로 갖다 놓는 국화 꽃다발이 올려져 있다. 벽과 창문은 선생님들과 친구, 선후배, 유가족들이 보낸 편지와 메모로 빽빽하다. 세월호 참사로 동생을 잃은 한 유가족은 “분향소 다음으로 아이들을 잘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런 교실을 정리하자는 의견이 처음 공식 거론된 건 지난 24일 단원고에서 열린 1, 3학년 학부모회의에서였다. 100여 명이 모인 회의에서 일부 학부모가 “2학년 교실이 아이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한다”고 주장했다. “고교에 진학할 중3 학생들이 단원고를 꺼린다”는 말도 나왔다.

 추 교장은 이틀 뒤인 26일 2학년 생존 학생들을 불러 이런 분위기를 전했다. “여러분들은 교실이 추모하는 소중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학년 학생들은 그런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추 교장은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분위기를 바꿔 가자는 차원에서 얘기를 꺼낸 것”이라며 “정리할지 그냥 놔둘지 학생들 의견을 물어보는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또 “(정리는) 유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추진할 수 없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정리한다면 내년에 2학년이 되는 학생들이 쓰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아직 그렇게 구체적으로 사용 방안을 생각한 단계가 아니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교장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강당에 갔던 한 학생은 “처음엔 교장 선생님이 우리들 의견을 묻는 것 같았는데, 나중엔 ‘누가 말려도 교실 없애는 것을 추진하겠다’는 식으로 단호하게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학생은 “그곳(2학년 교실)에 있으면 예전에 친구들과 놀던 생각이 떠오르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며 “아주 소중한 장소”라고 말했다.

 단원고는 세월호 참사로 2학년 학생 338명 중 250명을 잃었다. 1015명이던 전교생은 765명으로 줄었고, “상당수가 전학해 학교가 문을 닫을 것”이란 소문까지 돌았다. 그러나 참사 때문에 전학한 학생은 없었으며, 폐교설은 그저 ‘설’로 끝났다.

 학교 측은 이날 2학년 교실을 정리할 수 있다는 뜻을 유가족에게도 전했다. 추 교장과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이 이날 오후 한 시간 정도 만나 의견을 나눴다. 유 대변인은 “(교실 정리가) 학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계획 중 하나라는 말을 들었다”며 “생존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교실을 현 상태로 유지해 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교실 정리 문제와 관련해 일부 희생 학생 부모들은 가족대책위에 “학교를 항의 방문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가족대책위는 27일 오후 7시 단원고에서 추 교장과 면담할 예정이다.

 단원고 2학년 교실에 대해서는 경기도교육청 역시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지난 24일 안산단원고회복지원단과의 간담회에서 “현재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교실을 그대로 두겠다”고 한 바 있다.

안산=이서준·임명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